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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부천문화재단인가

부천시민신문 | 기사입력 2024/06/03 [08:58]

누구를 위한 부천문화재단인가

부천시민신문 | 입력 : 2024/06/03 [08:58]

▲ 당현증  논설위원

부천문화재단[이하 ‘재단’으로 칭함] 설립 목적은 지역사회 발전과 부천시민의 생활문화 진흥 및 문화 복지의 증대를 구현하기 위한다고 제1조에 명시되어 있다. 재단의 경영목표는 시민주체 문화예술 즐김으로 세우고 시민문화역량증진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 지역 언론을 통해 알게 된 신임 재단 대표이사의 취임식은 일부 초청 인사들만 참석한 채 비공개로 열려 아쉬움을 남겼다.

 

그동안 대표이사 취임식을 비공개로 해왔다하더라도 이번에는 오랜만에 지역 인사가 선임되었을 뿐 아니라 지역 정계에서는 나름 이름이 알려진 정치인이 선임돼 신임 인사에게 거는 기대가 남달랐을 수도 있는 만큼 구태여 ‘비공개’로 할 이유는 없었다고 본다. 특히 이번의 경우 상당히 오랜 기간 공석이었다가 선임돼 관련 기관이나 단체 뿐 아니라 시민들의 관심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고 끝에 고심한 결과는 기대보다는 안타까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그동안 부천문화재단은 2001년 창립 이후 부천이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문화 정책을 주도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왔다. 그러나 그동안의 공과(功過)도 적지 않았던 만큼 아직도 그 경력에 값하고 있는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보여진다. 존재감이나 체감의 정도가 극미(極微)한 것은 ‘문화’가 시민의 생활 가운데 자리하지 못했거나 없기 때문이다. 재단의 목표가 레토릭[修辭]에 그치고 탁상에 머물러 있다는 반증이다.

 

문화예술, 특히 지역문화 예술은 수준이나 격(格)을 논하기 이전에 주체의 정합성을 헤아리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쉬운 예로 공감이나 사전 지식을 요하는 고급한 문화와 예술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이다. 수용자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문화’ 예술은 외면과 반목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경험으로 주지하는 바가 크다. 

 

비교적 지역 문화예술이 잘 정착되는 사례에는 기반과 주체의 역량에 비례한다고 한다. 기반은 오랜 경력과 시간의 축적에 의한 역사와 함께, 누가 주체이고 중심에 자리하는가의 문제다. 부천 문화와 예술이 과연 시민이 중심이고, 주체인지를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다. 수준이 저급하다고 전혀 지역 정서와 체감 없는 인사가 자리할 때 과연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는 그 결과가 매우 자명하다.

 

최근 재단의 수장(首長)에 임명된 인물에 대한 부정적 이론이 분분한 것은 아마도 전문성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장의 격(格)과 관계되는 전문성은 리더로서의 중요한 책무이고 발전에 대한 가능성의 가늠자이기 때문이다. 문화가 시간의 축적이고 습윤(濕潤)의 절대성을 담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술에서의 전문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조금의 지나침도 없을 것이다. 

 

‘문화예술특별시’를 주창한 지도 오랜 부천이 아직도 시민문화자립도시라고 체감할 수 없고 문화자부심도 가질 수 없다면 누구의 책임일까를 다시 반성하는 것이 정치적 이유라면 불편하고 불쾌하고 불만인 것은 필자만일까. 문화재단의 대표에 대한 자격이 까다로워 많은 지원자의 선정이 늦어졌다는 이유가 결국은 악수(惡手)로 남겨지지 않을지 궁금해진다.

 

문화에 의한 정치와 정치에 의한 문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선례가 넘친다. 그 결과와 영향은 시민의 불행한 오롯한 몫이고 자칫 시민 갈등을 초래하는 경우도 보아왔다. 이참에 문화·시민 주체성 확립과 문화 시민향유권을 주창하는 따가운 기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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