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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포용(包容)과 수용(受容)

당현증 전 부천시의원 | 기사입력 2024/03/09 [06:01]

[독자칼럼] 포용(包容)과 수용(受容)

당현증 전 부천시의원 | 입력 : 2024/03/09 [06:01]

▲ 당현증 전 시의원 

22대 총선을 앞두고 발표되는 후보들의 공천 결과로 연일 정가(政街)가 시끄럽다. 아니, 시끄러움이 도를 넘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늘 마무리 단계에서 꼼수와 술수가 횡행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겪고 있는 것도 불편한 현실이다. 정치에서 특히 극심하다. 관심 있는 제3자 입장에서는 흥미(興味)거리로 재미를 제공한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의미가 심장하지만 말이다. 

 

선거 때만 되면 공천(公薦)으로 시끄러워, 이참에 부질없이 공천을 살펴본다. 공천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정당에서 선거에 출마할 입후보자를 공식적으로 추천함을 이르는 말이고, 범용(汎用)으로는 여러 사람이 합의하여 추천함과 공정하고 정당하게 추천함을 뜻한다. 풀이마다 공식(公式), 공정(公正)과 정당(正當)이 중심을 이룬다. 모두 아름다운(?) 단어들이다.

 

공식은 국가나 사회에 의해 공적으로 인정된 형식이나 방식으로서 국가가 인정하는 방식이고, 틀에 박힌 형식을 일컫는다. 공정은 글자 그대로 공평하고 올바름이고, 정당은 이치에 맞아 바르고 마땅하다는 뜻이 높은 단어들이다. 세상을 향한, 세상을 위한 사람의 길(道)을 밝히는 길잡이들이다. 결국 공천에서 시작된 이 말놀음은 무섭고 두려운 바가 분명하다. 공천(恐薦)이다.

 

왜 갑자기 이쯤에서 포용(包容)과 수용(受容)이 떠오를까. 다시 두렵지만 말놀음을 이어가본다. 포용은 ‘남을’ 너그럽게 감싸거나 받아들이는 것이다. 감싸되 너그럽게 행하(해야)는 것이다. ‘사람이나 그 마음이’ 넓어 감싸 받아들이는 성질이 있어야 너그러운 것이다. 때문에 본인은 너그럽다는 의미의 관대(寬大)를 계급적 용어로 본다. 소인배(小人輩)가 감히 마음이 넓고 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갑(甲)의 용어다. 아니 갑만을 위한 특권의 언어다.

 

이와 비교가 가능하다면, 수용은 ‘남의 요청이나 제안 따위를’ 받아들여서 자기 것으로 삼음을 말한다. ‘받는다’는 행위는 주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 조건적이고 상대적인 행동이다. 상대는 당연히 지위나 권위가 위의 단계인 갑이다. 어쩔 수 없이 받아야만 내 것이 되는을‘乙’의 입장이다. ‘내려’주지 않는다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면 늘 아랫니고, 밑이고, 기다림의 뒷전이다. 불편을 넘어 불안한 위치가 을이고 수용의 자리이다.  

 

공천의 탈 속엔, 탈(奪)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시끄럽지가 않을 것이다. 탈을 쓴 탈이기에 정치에서 늘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아수라(阿修羅)를 만든다. 투구는 분명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진흙밭엔 ‘백성’의 곡식 또한 튼실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리지만, 곧 봄이다. 아니 봄은 왔지만 지금은 분명 얼음과 눈의 계절이다. 비정상적인 자연 앞에 정상적인 인간이 있다는 그 것 또한 비정상적이다. 그런 공천과  선거의 시간이 잔인한 4월의 탈을 쓰고 다가온다. 포용과 수용에서 포·수를 제거하면 용(容)이 남는다. 용은 ‘얼굴’이고, ‘모양’이고, ‘몸가짐’이고 그런 것을 ‘그릇 안에 넣는 것’이다. 

 

관용(寬容)은 또 무엇이고 왠 말인가. ‘남의 잘못 따위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 무섭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름이다. 그 일컬음 아래 ‘국민을 위한 선거’를 위한 공천이 소리 없는 웃음을 만들 수는 없을까. 저 먼 언제쯤이라도 말이다. 곧 ‘흙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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