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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베를린에서 보고 듣고 느끼다⑤

“갈등 없는 민주주의도 없고, 민주주의 없는 평화도 없다”

부천시민신문 | 기사입력 2024/03/05 [04:46]

[특별연재] 베를린에서 보고 듣고 느끼다⑤

“갈등 없는 민주주의도 없고, 민주주의 없는 평화도 없다”

부천시민신문 | 입력 : 2024/03/05 [04:46]

올해로 남북이 분단된 지 71주년이다. 똑같이 국제적으로 분단됐음에도 동질성을 유지하며 평화적으로 교류하다 통일을 이룩한 동-서독, 무력을 통해 통일을 이룬 남-북베트남과 달리, 남-북한은 아직도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한 치의 변화 없이 고착되고 있다. 정권에 따라 관계개선의 희망이 보이는 듯했으나 돌아서면 늘 그 지리이다. 특히 별다른 교류 없이 지내다 보니 같은 언어와 문화를 지녔음에도 점점 그 동질성을 회복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 안타깝다. 

새해 들어서도 북한은 벌써 동해상으로 다섯 번이나 순항미사일을 발사해 우리를 긴장하게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통일은 우리의 지상과제이자 우리 민족의 소원이다. 본지에서는 2024년 새해를 맞아 ‘남북통일’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박미현 시인의 독일 탐방기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글은 본지와 지면 <NEW부천시민신문>을 통해 게재된다. <편집자 주>     

 

[연재순서] 

①“다시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②“현실과 섞이지 않고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③‘끊임없이 저항하고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는 것’ 

④‘진실을 알 권리와 기억할 의무가 있다. 기억의 정치 기억의 문화’ 

⑤“갈등 없는 민주주의도 없고, 민주주의 없는 평화도 없다” 

 

▲ ‘독일연방 구(舊) 사회주의통일당독재청산재단’ 방문 기념촬영  © 필자 제공

 

베를린에서 돌아온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베를린에서 살고있는 기분이다. 

7박9일 동안 보고 들은 것이 독일 전체의 모습은 아닐 것이며, 독일을 안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에서 만난 사람들과 기억의 장소들이 끊임없이 민주주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기억의 정치, 기억의 민주주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의 정치, 기억의 민주주의

 

▲ 곽노현 이사장(왼쪽)과 에펠만 이사장  © 필자 제공


이번 탐방의 백미는 ‘독일연방 구(舊) 사회주의통일당독재청산재단’(이하 ‘재단’) 라이너 에펠만 이사장과의 면담이었다. 

 

에펠만 이사장은 나치 히틀러 집권 시기 동베를린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자신이 사는 사회가 노동자가 주인이 아니라 국가의 노예이고, 소유물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고, 독재국가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구(舊) 동독의 마지막 국방장관을 지냈으며, 분단기 동독과 동서독 통일의 중심에 있었던 민주화 인사였다.

 

현재 과거 구 동독의 독재 청산과 독일 민주주의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가 살아온 삶 자체가 독일의 근현대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통역을 맡은 이진 소장은 독일에서 과거청산은 ‘과거 다시 보기, 과거 다시 열기’의 담론으로 변화되어 왔으며, 과거를 현재에 거듭해서 '다시 열어보는 과정'이라면서 재단 역시 청산 작업이 아니라 과거를 현재의 시점에서 거듭해서 다시 열어보고 성찰하는 대상으로 삼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서독은 통일조항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당의 말씀은 항상 옳아요'라는 노래를 배우고 다름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교육, 정치적 의사는 물론이고 꿈도 당이 알려주고, 청바지도 미제국주의의 산물이라며 못 입게 하고 통제했던 독재체제를 살았던 에펠만 이사장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동독 주민들은 총살당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는데,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경비병들은 총을 들고 있지 않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표정들이 혼란스러웠다. 그 현장에 있었는데 기적적으로, 평화적으로, 다리가 열려서 서독으로 넘어갔다. 동독시민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서방세계 언론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연대하면서 크게 보도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에펠만 이사장의 얘기를 들으면서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버린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미디어를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수 있었던 건 서독이 민주주의가 되어 있었고, 그런 사회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그런 대비가 되지 않았다면 통일도 없었을 것이다.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 상의 통일조항을 서독은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빌리 브란트의 신동방정책과 갈등 속에서도 '나쁜 관계가 무관계보다 낫다'는 기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관계하고 교류했기 때문에 통일이 될 수 있었다.” 

 

나이 80이 넘은 에펠만 이사장의 청년 같은 열변으로 진행된 면담은 이미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믿고 사랑하라, 결과가 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라

 

▲ 에펠만 이사장  © 필자 제공

“한국은 지금 한반도 위기, 민주주의 위기다. 정부나 정당에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시민사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남의 나라에 와서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 처지가 우울했는데 “민주주의를 믿고 사랑하는 것,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용기를 내는 것, 결과가 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 민주주의가 더 힘들다는 것, 모든 것에 민주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 똑같다면 끔찍한 일이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 민주적 교육이 모든 것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사장의 답변은 평소 시민운동에 대한 활동과 관계 속에서 필자가 생각했던 민주주의의 가치와 통하고 지향하는 것이어서 너무 고맙고 울컥했다. 또한 민주주의를 믿고 사랑하라는 말이 사람을 믿고 사랑하라는 말로 들려서, 사람 때문에 아프고, 사람 때문에 다시 살아가는, 사람 사는 세상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하기도 했다.

 

에펠만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남과 북이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가 더 민주적인 사회가 되어야 하고, 주변 국가와 북한이 부러워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동독이 민주화되고 통일까지 이르게 한 비결이다. 서로 간의 대결은 어떤 해결책도 되지 않는다. 통일에 이르는 여러 좋은 상황들이 있었지만, 서독의 우수한 민주주의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통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끊임없이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민주주의자를 향하여

 

필자가 베를린에서 만난 사람들과 기억의 공간들은, 독일이 과거를 기억하면서 현재를 성찰하는 일이며, 끊임없이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위한 그들 삶의 의지이자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뉴스에서 보았던 진보당 강성희 국회의원과 카이스트 졸업생의 ‘입틀막’ 사건은 현 정부의 반민주적인 행태를 상징적으로 증명하였을 뿐 아니라 언제든지 민주주의가 추락할 수 있다는 ‘현실’을 자각하게 하였다. 남북 관계 또한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하기 그지없다. 한반도에서 분단이 청산되지 않는다면, 남북 대결과 긴장은 물론이고, 극단적인 남남갈등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청산도 완수하기 어렵고, 우리가 바라는 평화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민주주의는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

 

인정하기 싫지만 “모든 민주주의는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말처럼, 우리의 민주주의가 겉과 속이 다르고 얼마나 허술하고 미숙한 수준이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큰 권력도, 작은 권력도, 멀리 있는 권력도, 가까이에 있는 권력도, 모든 공권력은 대의권력이다. 공권력을 가진 자들이나 세력이 알아서 잘하는 민주주의는 없다. 공권력이 남용되지 않고 사적 권력화되지 않게 하려면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화 세대인 우리 기성세대는 “침묵은 금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와 같은 비민주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비판도 하나의 대안이며, 비판이 없는 민주주의는 '죽은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광장에서의 구호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고, 발언하고, 저항하고, 행동하는, 민주주의를 살아야 하지 않을까. 갈등을 적극적이고, 민주적으로 승화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 스스로에게 덜 부끄럽고, 아이들에게 덜 미안하지 않을까, 희망과 미래가 있지 않을까. <연재 끝> 

 

▲ 에펠만 이사장과 대담하는 방문단 모습(오른쪽 두번째가 필자)  © 필자 제공

 

[필자 소개]

박미현 시인은 경기도 포천 출생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문학저널≫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일상에 대한 모독』(2011), 『그리하여 결핍이라 할까』(2020)가 있으며, 2023년 ‘박미현 시인의 그림으로 쓴 詩, 감정주의자’란 제목으로 첫 개인전을 개최, 화가로 데뷔하였다. 부천시민연합과 크라스키노포럼 공동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부천지부 회원, 부천시민연합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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