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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베를린에서 보고 듣고 느끼다④

‘진실을 알 권리와 기억할 의무가 있다'

부천시민신문 | 기사입력 2024/02/27 [09:56]

[특별연재] 베를린에서 보고 듣고 느끼다④

‘진실을 알 권리와 기억할 의무가 있다'

부천시민신문 | 입력 : 2024/02/27 [09:56]

올해로 남북이 분단된 지 71주년이다. 똑같이 국제적으로 분단됐음에도 동질성을 유지하며 평화적으로 교류하다 통일을 이룩한 동-서독, 무력을 통해 통일을 이룬 남-북베트남과 달리, 남-북한은 아직도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한 치의 변화 없이 고착되고 있다. 정권에 따라 관계개선의 희망이 보이는 듯했으나 돌아서면 늘 그 지리이다. 특히 별다른 교류 없이 지내다 보니 같은 언어와 문화를 지녔음에도 점점 그 동질성을 회복하기 어려워진다는 점이 안타깝다. 

새해 들어서도 북한은 벌써 동해상으로 다섯 번이나 순항미사일을 발사해 우리를 긴장하게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통일은 우리의 지상과제이자 우리 민족의 소원이다. 본지에서는 2024년 새해를 맞아 ‘남북통일’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박미현 시인의 독일 탐방기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글은 본지와 지면 <NEW부천시민신문>을 통해 게재된다. <편집자 주>     

 

[연재순서] 

①“다시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②“현실과 섞이지 않고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

③‘끊임없이 저항하고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는 것’ 

④‘진실을 알 권리와 기억할 의무가 있다' 

⑤‘갈등 없는 민주주의도 없고 민주주의 없는 평화도 없다’  

 

▲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서 일행과 함께 한 필자(왼쪽 첫번째)     ©필자 제공

 

인간의 정신과 인식은 어떤 차원에선 기억과 기억의 축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는 개인과 개인, 사회와 사회의 기억의 연대가 아닐까. 베를린 곳곳에 있는 기억의 공간을 방문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벽

 

베를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베를린 장벽’이다. 평화의 상징이 된 아름다운 장벽,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를 걸었다. 

 

이진 소장에 의하면 장벽 붕괴 후 통일 전까지 1년간 여러 가지 중요하고 특별한 장면들이 많았으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던 사람들의 노력과 희망이 모여 평화와 화합,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아 21개국 118명의 작가들이 참여해 예술적 작품들로 남겨진 것이라고 한다. 총 길이 1.3km의 장벽에 벽화를 그린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갤러리로 불린다. 

 

길게 이어진 작품들 앞에서 삼삼오오 사진도 찍고 걷다 보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었다. 이진 소장은 이 작품의 원제가 ‘이 끔찍한 사랑을 이겨낼 수 있도록 주여 날 도우소서’로 번역된다고 하는데, ‘형제의 키스’다. 냉전의 상징으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에리히 호네커 동독 공산당 서기장이 입을 맞추는 모습을 통해 냉전시대 두 공산권 지도자가 끼친 해악을 풍자한 벽화다.

 

장벽을 쌓고 장벽을 허무는 것도 결국 사람인데, 갈수록 치닫는 대결과 반목으로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무슨 일이 터질까 불안으로 가득 찬 한반도를 생각하니 추운 날씨가 더 춥게 느껴졌다. 어서어서 우리도 평화가 이룩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필자도 붓을 들고 평화를 그리고 싶었다.  

 

▲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에서 곽노현 이사장(왼쪽 첫번째), 필자 등이 함께 

 

▲ 벽화 ‘형제의 키스’ 앞에 선 필자


거대한 침묵처럼 이어진 홀로코스트 위령비

 

'홀로코스트 위령비’는 수백만 유대인 학살에 대한 독일의 반성이자 추모의 상징물이다. 격자 모양으로 된 미로처럼 이어진 2,711개의 조형물을 지나서 나오는데, 어둡고 서늘한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이 공간은 가스실로 향하던 유대인들의 참담한 심정을 연출한 것이라고 하는데 도시 한복판에 자신들의 나쁜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서 추모공원을 조성한 독일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국가폭력으로 희생되고 억울한 죽임을 당한 영령들, 우리의 가까운 과거, 해결되지 않은 사회적 참사를 내 일처럼 안타깝게 생각하고 연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악용하거나 왜곡하고, 심지어 조롱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기억하고 인식하는 온도의 차이 때문일까, 차디찬 기운이 으스스 몸속까지 파고들었다. 

 

▲ 베를린 홀로코스트 위령비


죽음보다 더한 공간 '유대인 박물관'

 

하루 일정이 끝날 무렵에 급하게 방문한 유대인 박물관은 분단 시절 베를린 장벽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박물관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조형물은 나치의 학살로 희생된 유대인들을 형상화한 1만 점의 얼굴 모양을 한 강철 조각이다. 유리창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는데 수많은 얼굴들이 겹쳐져 있는 모습이 당시의 참상처럼 억눌림과 무력감, 강철이 주는 극도의 차가움이 느껴져서 소름이 돋았다. 

 

24m 높이의 홀로코스트 탑은 너무 어두워서 거의 보이지 않는 암흑이었다. 높은 천장에서 겨우겨우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이 유일한 빛이다. 어쩌면 건축가는 그 한 줄기 빛이 주는 희망이 더 절망적이란 걸 표현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사방으로 꽉꽉 막힌 벽과 벽 안에 갇히고 짓눌리면서 느꼈을 그 공포는 감히 짐작할 수가 없다. 잠시동안 있는데도 음습하고 섬뜩해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이 기억의 공간은 베를린 시정부가 오랜 건축 기간을 거쳐서 2001년에 개관했다고 한다. 이렇게 기억의 공간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 한복판 곳곳에 있다는 것이 퍽 인상적이었는데 어렵게 어렵게 국회를 통과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해 거부권을 남발하면서 반인륜적이고 반민주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우리 정부를 또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한 공간

 

베를린 곳곳은 추모와 기억의 공간이었다.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는 베를린 시내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다. 나치 독일에 저항했던 정치범을 비롯해 유대인, 동성애자, 전쟁포로 등 20만 명이 넘게 수용되었고, 대규모 처형이 이곳에서 이루어졌으며, 처형실 옆에는 시체실도 있었다고 한다. 가운데가 텅 비어있는 부지 바깥쪽으로 드문드문 위치한 수용소와 높이 솟아 있는 건물이 황량하고 을씨년스럽다. 

 

특히 하얀 타일로 된 구조물이 있는 곳에 들어갔다가 너무 섬뜩했는데, 이곳이 바로 인체실험을 했던 장소라고 한다. 왜 그토록 나치들은 우월의식과 극단적인 편견으로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혐오하고 학대하고 학살했을까. 일본이 저질렀던 만행, 마루타가 떠올랐고,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이 끔찍했다. 인간의 악마 같은 모습과 그 뿌리 깊고 잘못된 인식의 본질이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전쟁과 국가폭력으로 학살되고 희생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몸서리가 쳐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 징용 등 과거에 대한 반성도, 진심 어린 사과도 없는, 일본 정부와 정권에 따라서 이랬다저랬다 대응이 바뀌는 우리 정부가 생각나서 또 한숨이 절로 나왔다.  

 

▲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입구에서 방문단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모습

 

▲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 있는 화장실

 

▲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의 침실 모습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한다

 

슈타지는 구 동독인들에 대한 탄압과 감시, 체포, 고문 등 권력을 마구 휘두르던 사찰기관이다. ‘슈타지 기록물보관소’는 이들이 수집한 감시 기록을 보관한 곳이다. 통일 과정에서 동·서독 모두 슈타지 문서 공개를 꺼렸다고 하는데, 민주화 혁명을 이끈 시민세력이 반대하고 나섰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슈타지 기록들이 보관될 수 있었다고 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는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기념해 ‘슈타지 기록물보관소’를 방문해 “우리는 자유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자유와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한다”는 유명한 어록(語錄)을 남겼다.

 

아직도 일제강점기의 잔재인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우리나라,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분단은 극심한 정치 양극화와 남북갈등, 남남갈등, 이념갈등 등 한반도 갈등의 뿌리이자 악순환의 고리다. 분단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만나고 대화하고, 갈등을 해결하려는, 더 적극적이고, 절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민주주의 없는 안전사회도, 주권도, 온전한 독립도, 해방도, 평화도 없기 때문이다. 

 

[필자-박미현 시인]

 

▲ 박미현 시인     

박미현 시인은 경기도 포천 출생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문학저널≫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일상에 대한 모독』(2011), 『그리하여 결핍이라 할까』(2020)가 있으며, 2023년 ‘박미현 시인의 그림으로 쓴 詩, 감정주의자’란 제목으로 첫 개인전을 개최, 화가로 데뷔하였다. 부천시민연합과 크라스키노포럼 공동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부천지부 회원, 부천시민연합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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