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봉 고택 ‘논란’...언론의 왜곡보도로 번져

민문련 부천지부, ‘박제봉 친일행위는 사실’ 역사의식 분명히 해야
"박희자 씨, 조부의 친일행적 변명하지 말고 진정한 반성이 앞서야"

부천시민신문 | 기사입력 2021/05/10 [13:37]

박제봉 고택 ‘논란’...언론의 왜곡보도로 번져

민문련 부천지부, ‘박제봉 친일행위는 사실’ 역사의식 분명히 해야
"박희자 씨, 조부의 친일행적 변명하지 말고 진정한 반성이 앞서야"

부천시민신문 | 입력 : 2021/05/10 [13:37]

▲ 박제봉 고택의 측면 모습(현수막 합성)     ©부천시민신문

 

부천역곡지구 내 공공개발로 철거 위기에 놓인 고(故) 박제봉 고택에 대한 보존 여부가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관련 기사를 다룬 K 인터넷 언론의 공정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지부장 박종선, 이하 ‘부천지부’)는 10일  “부천시는 친일파 박제봉의 집의 향토문화재 지정 시 친일잔재임을 명확히 밝혀 단죄비를 세우고, 일부 지역 언론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말라!”는 제하의 입장문을 발표하고, “사실을 왜곡하고 역사적 근거도 없는 내용을 소설화하여 여론 조작을 하고 있어 더 이상 이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부천지부는 지난 3월 23일 입장문에서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된 박제봉의 과거 친일 행적을 소상히 알리고, 문화재 지정에 있어 반드시 고택의 학술적·예술적·건축학적 의미 뿐 아니라 역사적 의미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K 인터넷 언론이 “역곡동 고택이 도시개발로 사라질 위기라는 여론을 조성하고 더 나아가 무상으로 기증하는데 부천시는 왜 방관하느냐의 논조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며 “5월 8일자 <한평생 봉사와 헌신의 삶 살아온 역곡 안동네 박희자 할머니의 고난-130년 고택 향토문화재 신청하자 ‘일제 잔재’ 낙인 찍고 비난하는 사람들 나타나> 제하의 기사는 사실을 왜곡하고 역사적 근거도 없는 내용을 소설화한 여론 조작”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부천지부는 “박제봉의 손녀인 박희자 씨는 위의 기사에서 ‘할아버지는 당시 일제 치하에서 조선총독부에 차출돼 근무를 했을 뿐이고 이후 성균관 고문으로 활동한 것이 전해 들은 이야기의 전부’라면서 거짓을 사실인양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친일인명사전> 및 한국현대사에 따르면 박제봉이 활동한 곳은 성균관이 아닌 경학원으로 일제는 1911년 6월 15일 경학원을 설립한 후 성균관을 폐지하였다. 경학원은 조선총독부가 성균관의 기능을 식민지배 정책과 이념을 홍보하는데 활용하기 위해 설립한 직속기구로 조선총독부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조선 지배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다. 경학원 '사성(司成)'은 친일단체의 고위직으로 그 자체만으로도 ‘적극적 친일행위’로 간주돼 ‘친일파’로 규정된다. 

 

따라서 “박희자 씨는 할아버지 박제봉에 대해 미화할 것이 아니라 「친일인명사전」에 나와 있는 역사적 사실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 조부의 친일행적을 변명하지 말고, 후손으로서 진정한 반성을 해야 한다”고 부천지부는 반박했다. 

 

부천지부는 또 해당 언론사에 대해 “박제봉의 집 소유자인 박희자 씨의 60년 봉사의 삶을 모욕한 적도, 친일파 후손이라고 반성과 사죄를 요구한 적도 없다”면서 “부천시 향토문화재 지정 시 친일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 다시는 이 땅에 친일파와 같은 부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친일잔재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라고 요구했을 뿐”인데 이 지적을 마치 “박희자 씨의 60년 봉사의 삶을 비난한 것처럼 왜곡 보도해서는 안된다”고 항의했다. 

 

부천지부가 밝힌 입장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부천시는 친일파 박제봉의 집의 향토문화재 지정시 친일잔재임을 명확히 밝혀 단죄비를 세우고, 일부 지역 언론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말라! 

 

지금 우리 부천시에는 역곡동 고택으로 불리며 부천시 향토문화재 심사를 앞두고 있는 친일파 박제봉의 집으로 논쟁이 뜨겁다.

 

(사)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는 지난 3월 23일에 “부천시는 친일파 박제봉의 집 앞에 단죄비(斷罪碑)를 세우고, 시민들의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친일인명사전」에 들어있는 박제봉의 과거 친일 행적을 소상히 알렸으며 문화재 지정에 있어 반드시 고택의 학술적․예술적․건축학적 의미 뿐만 아니라 역사적 의미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 

 

이러한 사실을 명백히 밝혔음에도 일부 지역 언론은 역곡동 고택이 도시개발로 사라질 위기라는 여론을 조성하고 더 나아가 무상으로 기증하는데 부천시는 왜 방관을 하느냐의 논조의 기사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 이러한 기사는 애교에 가깝다. 

 

5월 8일자 경기인신문에 실린 기사(제목 : 한평생 봉사와 헌신의 삶 살아온 역곡 안동네, 박희자 할머니의 고난 - 130년 고택 향토문화재 신청하자 ‘일제 잔재’ 낙인 찍고 비난하는 사람들 나타나)는 사실을 왜곡하고 역사적 근거도 없는 내용을 소설화하여 여론 조작을 하고 있어 더 이상 이 상황을 방치할 수 없어 2차 입장문을 발표하게 되었다.  

 

박제봉 집의 소유자, 즉 박제봉의 손녀 박희자 씨는 위의 기사에서 기자와의 대화에서 ‘그의 할아버지는 당시 일제 치하에서 조선총독부로 차출되어 근무를 했을 뿐이라고 한다. 이후 할아버지는 성균관 고문으로 활동했고, 그것이 박 할머니가 전해 들은 이야기의 전부이다.’ 라고 하면서 거짓을 사실인양 호도하고 있다. 

 

박제봉이 활동한 곳은 성균관이 아닌 경학원이다. 일제는 1911년 6월 15일 성균관에 경학원을 설립한 후 그해 9월 성균관을 아예 폐지하였다. 경학원은 조선총독부가 성균관의 기능을 식민지배 정책과 이념을 홍보하는데 활용하기 위해 설립한 직속기구로 조선총독부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조선지배를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경학원 사성은 친일단체의 고위직으로 그 자체만으로 적극적 친일행위로 간주되어 친일파로 규정이 된다. 

 

박희자씨는 할아버지 박제봉에 대해 미화를 할 것이 아니라 「친일인명사전」에 나와있는 역사적 사실 앞에 겸손해지고 더 나아가 조부의 친일행적 앞에 변명이 아니라 후손으로서 진정한 반성이 이루어졌야 했다. 

 

부천시청 로비에는 부천을 빛낸 6명의 사진과 행적이 담겨 있다. 그 중 한 분이 친일파 박제봉의 동생인 박제환 선생이다. 박제환 선생은 회고록 <지봉한담>에서 8.15 광복 후에도 경기도청 식량과장으로 근무하다가 자신의 소극적인 친일반민족행위 경력이 부끄러워 사임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농지를 기증하여 공립 부천농업중학원을 설립하였는데 지금의 부천중학교와 부천공업고등학교의 전신이 되었다고 한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형제가 완전히 다른 삶을 산 것다. 형은 친일파로, 동생은 부천을 빛낸 존경받는 사람으로 역사에 남은 것이다.

 

또한 이런 기사를 쓴 기자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진정한 언론이라면 역사적 사실을 확인한 후 확실한 내용을 기사화해야 한다. 언론인은 권력을 감시하고 그 어떤 왜곡 앞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사는 부천시민들에게 언론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비웃음을 살 뿐이다. 

 

우리 (사)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는 박제봉의 집 소유자인 박희자 씨의 60년 봉사의 삶을 모욕한 적이 없다. 심지어 친일파 후손이라고 하여 반성과 사죄를 요구한 적이 없다. 그 오래된 집이 박제봉의 집이므로 부천시 향토문화재 지정 시 친일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 다시는 이 땅에 친일파와 같은 부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친일잔재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역곡동 고택이 친일파 박제봉의 소유였다는 사실을 밝힌 것을 마치 박희자 씨의 60년 봉사의 삶을 비난한 것처럼 왜곡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 부천시 집행부와 시의원들에게 친일파 박제봉의 집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한다. 지난 3월에 열린 제250회 임시회에서 박명혜 시의원이 부천시 문화재, 도시 유산 관련해 질의를 하였다. 즉, 역곡동 고택에 대해 대책을 세우라고 시 집행부에 말한 것이다. 부천시 집행부와 시의원들은 친일파 박제봉의 집에 대해 사사로운 이해나 선입견 없이 조례에 기반하여 판단하고 그 사실을 시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지난 4월 말 ‘경기도 일제 잔재 청산에 관한 조례안’이 경기도의회를 통과하였다. 제2조(정의)에 ‘일제 잔재’란 “일본제국주의 및 친일반민족행위자에 의하여 경기도에 남아 있는 일본제국주의의 모든 흔적을 말한다”라고 하여 역곡동 박제봉의 집은 단순히 부천시의 문제가 아니라 경기도 더 나아가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역사적 사실을 선택적으로 취합하고 왜곡시켜 향토문화재를 지정하면 추후에 또다른 분란과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곧 열릴 부천시문화예술위원회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며, 역곡동 박제봉의 집은 친일잔재 또는 일제잔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명확히 밝힌다. 

 

 (사)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사)민족문제연구소가 밝힌 친일파 박제봉의 삶(요약)

1) 1892년 출생~1964년 사망 

2) 구체적 행적 : 

 - 1916~1927 : 부훈도 훈도 교유 

  1916년 10월부터 1917년까지 경성 수하동공립보통학교 부훈도

 1918년 경성 매동공립간이실업학교 훈도 겸 매동공립보통학교 부훈도. 10월   사직

  1922년 경성 매동공립간이상업학교 훈도

  1923년 매동공립상업보습학교 교유

  1924년~1925년 경성 수하동공립보통학교 훈도

  1926년~1927년 경성상업학교 교유 겸 경성 수하동상업보습학교 교유

 - 1928~1939 : 조선총독부 학무국 학무과 촉탁 

 - 1939년 11월 조선유도연합회(朝鮮儒道聯合會) 참사

 - 1941년과 1942년에 조선총독부 직속기구인 경학원의 사성(司成)

 

1937년 8월 국방헌금으로 조선총독부 학무국 문서과에 1000원을 헌납했다. 촉탁이 받는 월 수당이 90원인데 무려 1000원을 헌납해 󰡔동아일보󰡕·󰡔매일신보󰡕·󰡔경성일보󰡕에 헌납미담 기사가 실렸다. 

 

경학원 사성으로 있으면서 1941년 10월 유림 가운데 중견지도자로 선발된 조선유림성지순배단의 간사로 일본의 이세(伊勢)신궁과 메이지(明治)신궁을 비롯한 성지·유적을 순례했다. 순례를 마치고 귀국해 ‘황도(皇道)의 성지’를 참배한 후의 기쁨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저는 이세신궁의 신 앞에 배례하며 황국신민의 선서를 소리 높여 제창했는데, 지금까지도 가슴이 뛸 정도의 감동이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황국신민이 되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47년 전, 즉 일청전쟁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이로부터 일로전쟁 후에는 메이지천황의 은덕이 더욱더 반도(半島)에 미쳐 결국은 한국을 병합하게 되어 완전한 황국신민이 되었던 것입니다.” 

 

1942년에는 총독 미나미(南次郞)와 정무총감 오노(大野)가 이임하는 것을 전별하며 시를 지었는데, 특히 총독 미나미를 살아있는 부처라고 칭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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