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인생 >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복사골 뜨락에 내린 내 영혼의 별⑤
부천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2주년 기념 연재Ⅰ 구자룡 편
기사입력  2020/01/13 [13:31] 최종편집    구자룡 시인
구자룡 시인의 저서 행적기   부천시민신문은 부천시가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2주년을 맞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본지 172호부터 관내 문인들의 자서전적 문학이야기를 연재한다. 첫 순서는 본지 편집주간인 구자룡 시인이다. 이번 연재 글은 지난해 10월 16일 부천디카시협회(회장 정 ▲ 구자룡 시인 캐리커...
더보기
부천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자룡 시인의 저서 행적기

 

부천시민신문은 부천시가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2주년을 맞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본지 172호부터 관내 문인들의 자서전적 문학이야기를 연재한다. 첫 순서는 본지 편집주간인 구자룡 시인이다. 이번 연재 글은 지난해 10월 16일 부천디카시협회(회장 정

▲ 구자룡 시인 캐리커처 

창배)에서 강연한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편집자 주>
 
그동안 시집이니 산문집이니 하며 36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뭐가 그리 쓸 일이 많은지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부천문학의 역사가 궁금했다. 그리 길지도 않은 부천문학의 역사, 내가 살아온 역사이기에 눈앞에 아른 거렸다. 그동안 수집했던 자료를 정리하다보니 생각지도 않은 책 한권이 엮어졌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부천 최초로 문학의 역사를 담은 <문학으로 만나는 복사골 부천> 2004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문학이다. 문학은 사람과 더불어 숨 쉴 때, 비로소 생명력을 발휘한다. 또한 문학은 그 시대 문화를 발전시키고, 발전된 문화의 가치는 그 시대 문학에 반영되기도 한다. 그만큼 문학은 우리 인간에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동안 부천천주교회 100년사를 출간하고 나서 생각을 해보았다. 세월이 흐르면 어쩌면 사라질 수도 있는 부천문학의 역사를 보듬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향토 유산이 될지도 모르는 부천의 근대문학을 정리하고 싶었다. 내가 부천에 살면서 직접 피부로 느낀, 죽은 역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이기에 더욱 용기가 생겼다.


부천 문학의 역사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부천출신이 서울에서 활동한 시기와 외지 문인이 부천으로 이주해 와서 활동한 시기로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려시대 부천의 이름 수주樹州를 호로 쓰고 있는 부천 고강동 출신의 변영로 시인과 소사가 고향이라는 뜻의, 지금은 서울로 편입된 부천군 소사읍 궁리에서 태어난 소향素鄕 이상로 시인, 이 두 시인은 주로 서울서 활동을 하여 부천을 빛냈다. 


부천 문학의 본격적인 태동은 1956년 대구에 살던 최은휴 시인이 부천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68년 ‘부천예술동호인’을 결성하면서 비롯되었다. 당시 부천군을 통 털어 예술인은 고작 손꼽을 정도였다. 사진 김수열·김수근, 미술에 이상덕, 무용에 박효순, 이들은 모두 부천 출신이었고 음악에 이동순, 문학에 최은휴 시인만 외지인이었다. 나름 자존심을 세우면서 부천 향토예술을 지켰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978년에서야 부천 최초로 ‘한국예총 경기도지부 부천지구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졌는데 그 안에 부천 처음으로 문학분과가 만들어졌다. 인천에 살던 이석인·전순영 시인, 시흥에 사는 김연식 시인, 그리고 소명여고 교사 구자룡 시인, 수필가 유영자·이재인·김정오, 소사성당 호인수 신부 시인 등이 합세를 했다. 비록 시골(?)치고는 제법 많은 문인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부천 출신은 한명도 없었다. 그나마 1973년 부천이 군에서 시로 승격한 덕분이었다.


이후 1984년 최은휴와 이추림 시인을 주축으로 한국문인협회 부천지부가 탄생되었고, 1988년 이병기 유한대 교수 주축으로 가영심·호인수·구자룡 시인, 소설가 유덕희·양귀자, 문학평론가 김봉군·민충환으로 구성된 ‘부천문우회’가 창립했다. 1989년에는 구자룡 시인을 비롯해 문제술, 박수호, 이정균, 최동심, 김기열, 송종권 등에 의해 ‘복사골문학회’가 만들어져 지난해 30년을 맞았다. 2000년에는 민충환, 강정규, 구자룡 부천문학의 3인방이 이문구 당시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의 도움으로 (현재, 한국작가회의) 부천지부를 창립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외에도 부천노동자문학회, 부천여성문학회와 글벗문학회, 초등교사문학회, 중등교사문학회, 필맥문학회, 시민문학회, 그리고 장르별로 시, 시조, 소설, 수필, 아동문학, 청소년 문학회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각종 문학단체가 생겨났다. 인구가 팽창하면서 문학인구도 늘어난 것이다.
이 책에는 문학의 역사뿐만 아니라 부천에 거주하는 작가의 연보, 저서 총 목록, 부천문학 지도 등 이런저런 자료들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문학의 역사를 집대성한 부천 최초의 저서가 되었다.


유감스러운 것은 지난 2016년 부천시가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가입할 때 이 책의 내용 일부를 자료로 삼았다는 점이다. 물론 저자에게 말 한마디 않하고 도용을 했다. 저작권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말이다. 결국 곰은 재주만 부리고 말았다.

 

부천문학을 빛낸 선구자 <최은휴 연가戀歌> 2007

어느 날, 서재를 정리하다가 매우 귀한 자료를 발견하게 되었다. 2002년에 작고한  시인 최은휴 선생의 오래된 스크랩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찌된 경로로 이 귀한 자료가 내게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도 신기해서 유심히 살펴 보았다. 이 안에는 평소 말로만 듣던 그런 전설적 1960년대부터 최은휴 선생의 기록이 담겨져 있었다. 순간 이 자료를 보듬고 싶었다.


사실 그동안 나는 최은휴 선생과는 좀 소원疏遠했던 사이였다. 나이도 학교도 선배였지만, 나와는 이념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동안에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떠나 고인이 된 선생에게 사과의 뜻으로 이 스크랩을 정리하고 싶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생과 나와의 관계 때문이다. 민충환 교수는 발문에서 “그때 그것을 알았다면”처럼, 진작에 그 뜻을 알았다면 하는 선생에 대한 감정이 폭발적으로 밀려와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책을 출간했다.


최은휴 선생과의 인연은 이렇다. 내가 부천으로 이사 오고 3년 뒤인 1975년 인구 5만도 안 되었던 시골에서 돈키호테적인 일을 하나 벌이고 말았다. 이름 하여 ‘제8회 구자룡 개인 시화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지만 참으로 용감무쌍한 사건이었다.

▲ 시화전을 알리는 현수막     © 부천시민신문


서울에서 이미 일곱 번이나 전시회를 한 경험이 있기에 그것을 믿고 부천농촌지도소 건물 2층 공간을 빌려 시화전을 했다. 그러나 오픈 하는 날, 학교 선생님과 서울서 친구 몇 명이 왔을 뿐, 일주일 내내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서울서 할 때는 관객들이 구름처럼 밀려왔는데, 여기가 시골이라는 것을 순간적으로 깜빡 잊은 것이다.


그렇다고 수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날 작품을 거두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데 누군가가 다가와 명함을 한 장을 내밀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중앙일보 부천 주재기자 최은휴’였다. 나도 한때나마 신문기자를 했기 때문에 무척 반가웠다. 아니 나를 알아보는 관객이 있어 더 반가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최은휴는 대구 출신으로 1956년경 소사에 정착하면서 시도 쓰고, 소설도 쓰는 기자 겸 문인이었다. 대학교 선배이기도 했고, 문학의 불모지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며 외롭게 문학 활동을 하고 있던 그런 선구자적인 작가였다.


그래서 최은휴는 부천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어 다녔다. 연극도, 시화전도, 백일장도 처음으로 부천에 도입했다, 다시 말하면 부천 문학의 창시자다. 그 외 1967년에 부천 최초의 시집 <맹탕허탕>을 출간하고 1974년 경기문학 시 동인지 <시류>, 1976년 부천의 발자취 <부천예총>, 1983년 동인지 <부천문학>을 발행하니 이것도 최은휴 시인이 만들어 낸 부천의 최초다.


최은휴 선생은 다방면의 작가였다. 시집 <맹탕허탕>을 비롯해 <흙과 꽃과의 노래>, <복사골 연가>, <임 따라 강 따라>, 수필집 <왜 이렇게 처방 되었나>, <50년의 사색>, <사색과 애향의 합창>, <복사골 비망록>, <한국인의 의식구조>, 장편소설집 <갈잎의 분노>, <굼벵이의 뒷 걸음질>, <영군번의 병사>, <복사골 아리랑>, <하얀 질경이>, <여자가 담을 넘을 때> 등 한국문단과 부천문단에 길이 빛날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천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운영팀은 부천문학의 원조요, 창시자 최은휴를 무시하고 소외시키고 있다. 이는 부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분개할 일이다. 아니 부모가 못났다고 무시하는 패륜아悖倫兒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부천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