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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계절도 등을 돌리나?"
[世上漫筆]
기사입력  2020/02/09 [23:13]   당현증 전 시의원
▲ 당현증 전 시의원  겨울이라 하지만 느끼기도 전에 어느덧 입춘이 지났다. 자연의 이법은 공의롭다. 그 가운데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자연은 ‘스스로’와 ‘저절로’를 본질로 한다. 스스로는 자발적 의도를 전제로 능동적 행태와 짝한다. 저절로는 작위를 제거한 자연을 바탕으로 한다. 곧 계절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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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현증 전 시의원 

겨울이라 하지만 느끼기도 전에 어느덧 입춘이 지났다. 자연의 이법은 공의롭다. 그 가운데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자연은 ‘스스로’와 ‘저절로’를 본질로 한다. 스스로는 자발적 의도를 전제로 능동적 행태와 짝한다. 저절로는 작위를 제거한 자연을 바탕으로 한다. 곧 계절의 위대한 갈마듦이 자연의 이법이다.

 

새해의 첫 절기인 입춘은 농사의 기준으로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헤아리는 농사점을 보기도 하고, 다섯 가지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서 가장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믿었다. 자연을 의식한 조상의 오랜 경험의 결과이고 순응의 결과다.

 

문화가 인간과 자연의 다툼의 결과라기보다 인간의 자연에 대항한 일방적 편의와 생존 방식의 가능한 방편이었다. 인간의 한계는 자연의 거대한 침묵 가운데 인간의 깨달음으로 가끔은 許與해왔다. 값없는 선심이다.

 

우한(武漢) 폐렴(신종 코로나)으로 지구 곳곳에 疫病이 창궐하고 있다. 자연의 인간에 대한 재앙이다. 자연을 자연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인간의 지혜를 잘못 활용한 대가(代價)이다. 가혹하다. 반성하지 않으려는 허점은 깊고 치유는 한없이 멀다. 이제 어두운 반성의 시간이 드높은 파도가 되어 몰려온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거나, 있어야 할 지식이나 판단력을 상식이라고 일컫는다. 지금 우리는 상식에 온전할까. 편가름과 갈등의 일상화가 때로는 두렵고 불편하다. 상식이 상식이 아님이기 때문이다. 어디에 이유가 있고, 무엇으로 인(因)함일까. 정치 탓일까. 교육 탓일까. 어지럽다.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시절도 있다. 지금은 가고 없는 사람다운 향기의 시절이다.

 

정치는 바름(正)이다. 그 바름은 언행이나 태도, 예의가 규범이나 도리에 맞음이고, 사람으로서 거짓이나 속임이 없이 정직하다는 의미다. 지금의 정치가 그럴까. 교육은 더욱 아닐 거 같아 안타깝다. 책임은 우리 모두이다. 의무의 소홀도 크다. 자연과 대결이 깊을수록 바름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어디에다 통곡을 할 것인지 답이 어두워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국가의 명운을 가른다는 선거계절로 의견이 분분하고 번거롭다. 선거는 유일하게 유권자로서 권리와 책임을 동시 부여한다. 책임은 선택의 결과에 값함이고, 권리는 선택을 위한 결정권에 관련한다. 현명한 선택에는 관찰과 관심을 전제로 하고, 책임에는 결과를 응보로 견뎌야 한다.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 전 도둑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현명이다. 

 

‘혹시(或是)’가 ‘역시(亦是)’가 되지 않아야 하는 행운은 바람직하지 않은 열매다. 선거의 결과를 가끔은 ‘민심은 천심(天心)’이라 한다. 곧 백성들의 마음은 하늘의 뜻과 같아서 저버릴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기엔 그 백성의 선택이 혹시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는 하늘의 의중에 합함이 전제다. 천벌(天罰)은 결과적이다. 지금 우리는 하늘로부터 재앙을 부른 것이 아닌지, 약도 없는 新種 바이러스에 무력함이 안타깝다. 상식이 상식을 거부한 天刑은 아닌지 알 수 없어 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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