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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골 뜨락에 내린 내 영혼의 별④
부천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2주년 기념 연재Ⅰ 구자룡 편
기사입력  2019/12/23 [12:08] 최종편집    구자룡 시인
구자룡 시인의 저서 행적기   ▲ 구자룡 시인 캐리커처     <부천시민신문>은 부천시가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2주년을 맞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본지 172호부터 관내 문인들의 자서전적 문학이야기를 연재한다. 첫 순서는 본지 편집주간인 구자룡 시인이다. 이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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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시인의 저서 행적기

 

▲ 구자룡 시인 캐리커처    

<부천시민신문>은 부천시가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2주년을 맞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본지 172호부터 관내 문인들의 자서전적 문학이야기를 연재한다. 첫 순서는 본지 편집주간인 구자룡 시인이다. 이번 연재 글은 지난 10월 16일 부천디카시협회(회장 정창배)에서 강연한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편집자 주>  

 
1985년부터 8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자료로 ‘부천 천주교 100년사’를 1991년 12월 27일 <소사본당 반세기>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였다. 완전히 발로 뛰어 다니며 수집한 자료들이다. 이때 뜻하지 않게 한국시단의 거봉 정지용 시인이 부천에 살았다는 사료史料를 발굴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소사본동은 이 자료를 왜곡하고 있어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부천에 살았던 정지용을 발굴한 <소사본당 반세기> 1991

▲ <소사본당 반세기> 책 표지와 부천시민신문에 실린 정지용 기사     © 부천시민신문


부천은 참 매력적인 곳이다. 30년간 서울에서 살다 온 나에게 무한한 꿈의 세계로 안내 해주기 때문이다. 부천 천주교회 100년의 역사를 찾았던 일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닌데 죽어라 열심히도 발품을 팔았다.

 
그러던 1986년 어느 가을날이었다. 한 신자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사성당 창립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윤 회장이라는 분이었다. 다음날 오후 소사동 어디쯤 산다는 윤 회장을 집으로 찾아갔다. 만나자마자 “소사성당을 세운 분이 신부님이 아니고 누가 있다고 하던데…” 하면서 말을 흐려 보았다.

 
윤 회장은 펄쩍뛰면서 당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다음날 또 갔다. 다음날에도 또 갔다. 이번에는 술을 한 박스 어깨에 메고 갔다. 그리고는 소주잔을 내밀었다. 주거니 받거니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윤 회장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약속을 하나 하자고 했다. 이 일에 대해 죽어도 절대로 당신의 이름은 밝히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무슨 이야기 이길래 이러나 싶었다. 윤 회장은 한참을 망설이더니 한 숨을 푹 쉬면서 그 사람이 정지용이라고 말했다.

 
정지용?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은 뜻밖이었다. 평소 술은 못 마시지만 인사차 한잔 마신 술이 확 깼다. 윤 회장은 정지용이 누구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고 있었다. 알고 있는 것은 다만 ‘인텔리, 빨갱이’ 정도였다. 갑자기 부천 천주교 역사보다 정지용에게 더 관심이 쏠렸다.

 
정지용은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통해 대상을 선명히 묘사하는 한국 현대시의 신경지를 개척한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그런 시인이 소사에서 살았고 거기에다 성당과 인연이 있다하니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큰 특종감이었다. 그러나 때는 전두환 군부 시절, 어찌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이 기막힌 사건을 누구에게 알려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정지용이 월북 작가로 알려져 있었기에 많이 힘들었다.

 
다행히 1988년 정지용을 비롯한 월북 작가들이 해금되었다. 이 사실은 1989년 8월 12일자 <부천시민신문> 제2호에 ‘복사골 문학기행’이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월북 작가가 해금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세상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형사들이 학교로 찾아오고, 경찰서까지 불려가기도 했다. 그 때 각서 몇 장 쓰고 풀려났지만 참으로 힘든 시절이었다.

 
문학의 불모지, 부천 지역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창립한 자생 문학단체 ‘복사골문학회’에서 용감하게도 1993년 5월 30일 정지용이 살던 부천시 소사동 90-5번지에 그의 장남 정구관의 고증을 받아 기념 푯돌을 세웠다.

 
‘부천 천주교 100년사’가 <소사성당 반세기>로 발행되는 바람에 50년으로 줄어들고 말았지만 정지용이 살던 곳을 발굴한 것은 내 분신 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이 책의 일부 내용을 무단으로 도용한 성당이 많다. 고해성사를 해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천주교 신자로써 부끄럽고 슬픈 일이다,

 
또한 부천시 소사본동에서는 마치 정지용을 자기네들이 발굴한 것처럼 왜곡을 하고 있다. 아무 근거도 없이 정지용의 ‘향수 길’을 엉뚱한 곳에 만들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지용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발굴했을 때 묻어두는 건데, 지금 생각 하니 후회가 된다.

 

아련한 고향의 언어 가곡 집 <아, 소사 속에 내가 살고 > 1995  

▲ 악보와 행사 팜플릿     © 부천시민신문


1995년 11월 27일 깊어가는 늦가을의 밤, 부천시민회관에서는 은은하고 감미로운 가곡이 흘러나왔다. 1985년 출간한, 내가 쓴 향토 시집 <복사골 우리 동네>에 수록된  시에 작곡을 한 <부천 향토 시 기곡의 밤>이 열리고 있었다. 부천의 동네 이름과 그 유래에 작곡가들이 곡을 붙여 만든 노래를 성악가들이 공연하는 음악 행사였다.

 
객석에 앉아 있자니 감회가 깊었다. 부천이 고향도 아니면서 고향처럼 25년여를 살다 보니 내 시가 노래가 되어 이렇게 큰 무대에 오르게 되다니… 그 날은 흥분되어 마음이 무척 고무鼓舞되어 있었다.

 
1995년 봄이었다. 고려오페라 단장이자 성악가인 원영재 선생이 나를 찾아왔다. 당신도 부천이 고향이라면서 내 시 중에서 소사를 노래한 시로 돌아오는 가을, 향토 가곡의 밤을 열고 싶다면서 1985년에 출간한 <복사골 우리 동네>에서 20편만 골라 달라고 했다.

 
솔직히 원영재 선생과는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가끔 공식석상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며 차를 마시는 정도였다. 그런데 나를 찾아 온 것이다. 우선 고마웠다. 내 시를 그것도 한두 편이 아니라 20여 편을 가곡으로 작곡해 무대에 올려 준다니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 <아, 소사 속에 내가 살고> 외 원미산, 돌내, 진말, 서촌말, 장고개, 배못퉁이, 성주산, 봉골, 먹적골, 춘의산 매봉, 시루뫼, 장말, 부천의 옛 이름, 당아래, 소쇠 등 18편의 시를 작곡가 송재철, 박정양, 박영술이 작곡을 하고, 바리톤 원영재, 베이스 서양원, 테너 이준명, 메조 소프라노 전미숙, 소프라노 송금선 등이 불러 깊어가는 가을밤을 수놓았다. 내가 근무하던 소명여자고등학교 합창단도 특별출연하여 자리를 빛냈다.

 
이들이 연습을 하던 그 6개월간 나는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연습장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연습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보고 싶었다. 아니 그들과 동참하며 같은 마음으로 함께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야 공연하는 날 무대에 선 성악가나 작곡가들을 마음 편히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당시 부천 예총 회장이었던 이상덕 화백은 부천이 고향이기에 향토 가곡의 밤이 더욱 간절했나 보다. 이렇게 축하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아무리 세월이 복잡다단하게 흘러도 우리 모두 가슴 한 편에는 누구나 웅크리고 있는 향수, 어린 고향의 마음이 있습니다. 내 고향 부천의 흘러간 면모를 시에 담아 이루어진 가곡의 밤이어서 그런지 더욱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문학평론가이자 가톨릭대학교 김봉군 교수도 평론을 통해 당시 공연 사항을 <구자룡의 향토 문학 세계>라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자룡 시의 화자는 탈문명적 토속어만을 구사한다. 이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전철이 마을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5톤 트럭이 광음을 내뱉으며 질주하는 복사골 부천의 오늘, 이 쇠붙이 문명의 비바람에 맞선 그는 신화적 생명력과 농경시대의 순수로써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 악보집에는 20편의 시에 곡을 붙인 악보와 고려오페라 단장 원영재, 한국예총 부천지부장이자 수채화가 이상덕, 민선 제1기 이해선 시장, 박노운 부천시의회의장, 부천교육청 박인희 청장 등의 격려사가 실려 있고, 출연자들의 사진과 프로필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의미가 깊은 아련한 고향의 언어 가곡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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