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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골 뜨락에 내린 내 영혼의 별③
부천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2주년 기념 연재Ⅰ 구자룡 편
기사입력  2019/12/10 [18:50] 최종편집    구자룡 시인

구자룡 시인의 저서 행적기 3

 

부천시민신문은 부천시가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2주년을 맞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본지 172호부터 관내 문인들의 자서전적 문학이야기를 연재한다. 첫 순서는 본지 편집주간인 구자룡 시인이다. 이번 연재 글은 지난 10월 16일 부천디카시협회(회장 정창배)에서 강연한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편집자 주> 

 

▲ 구자룡 시인 캐리커처

30년간 서울서만 살다. 고향 같은 소사, 부천으로 이주하고 48년째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은 부천이 고향이냐고 묻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 이유는 아마 부천에 관심을 두고 그동안 출간한 책 속에 자주 등장하는 부천의 이름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골목길에서 만난 시집 <원미동 닭집> 1988
 
부천으로 처음 이사 와서 살던 곳이 부천 북초등학교 앞, 장독대를 개조한 단 한 칸짜리 방이었다. 네 식구가 살기는 협소했지만 편안했다. 아이들이 산으로 들로 마음껏 뛰놀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옛날 말로 독채 전세를 얻어 이사 간 곳이 원미동 중앙 사우촌이었다. 중앙일보 기자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 <미리내의 서울이야기>와 <원미동 닭집> 표지     © 부천시민신문


내가 근무 하던 학교와는 한 10여분 거리 밖에 안 되었는데 학교와 집을 오가는 골목길가에 간판 없는 닭집이 하나 있었다. 출근을 하다보면 그곳엔 머리가 허옇게 된 남자와 화장을 짙게 한 여자가 살았는데, 남자는 언제나 숫돌에 칼을 갈고 있었고, 여자는 머리 비듬을 털고 있었다. 닭장엔 언제나 닭이 꽉 차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때 보면 닭장 속에 닭은 한 마리도 없고, 주인과 여자는 귀신딱지 분을 바르고 항상 껄껄대고 있었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아침에 출근을 하다보면 신기하게도 어제 아침과 같이 남자 주인은 열심히 숫돌에 칼을 갈고, 여자는 머리 비듬을 털고 있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마다 이런 풍경을 보다보니 한 편의 시가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로 써서 시집을 출간할 요량으로 원고 뭉치를 들고 평소 친분이 있는 호인수 신부님을 찾아갔다. 발문을 써달라고 간 것이다.


호인수 신부로 말할 것 같으면 물론 시도 잘 쓰지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로 정부에 대고 할 말은 다하는 그런 깡다구(?)가 있는 신부였다. 내 고해성사 전담 신부이기도 했다. 지금은 은퇴를 했지만 한때는 의기투합하여 부임하는 성당마다 야학을 열기도 하였다.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하여간 그때 사제관으로 달려가 받은 글 속에는 황송하게도 이렇게 쓰여 있었다.
 
“구자룡 시인은 시의 소재를 모두 자신의 분신으로 본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자신과 일정한 타자他者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사랑하고 껴안아야 할 또 하나의 자신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날 저녁 포장마차에서 발문을 쓴 원고료 대신 소주를 마시며, (물론 나는 물을 소주처럼 마시며) 신부님에게 시집 제목을 지어 달라고 했더니 두 말 않고 원미동에 사니까 ‘원미동 닭집’이 좋겠네 하셨다. 이렇게 해서 1988년 9월에 태어난 13번째 시집 <원미동 닭집>은 오다가다 골목길에서 만난 시집이 되었다.


여기에 얽힌 일화가 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인 딸아이가 어찌 어찌하여 <미리내의 서울 이야기>라는 시집을 1988년 4월에 출간하게 되었다. 15세 소녀가 당시 정치를 비판했다고 하여 KBS 라디오 인기방송 ‘황인용 강부자입니다’ 등 각종 매스컴에 보도 되는 바람에 딸의 시집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출판사에서는 ‘때는 이때다’ 하며 딸의 힘(?)을 얻어 그 해 9월 시집 <원미동 닭집>을 출간했다. 표지 디자인도 같았다. 그러나 딸의 시집은 날개 돋친 듯 팔리는 동안 내 시집은 지인들이 몇 권 사줄 뿐 잘 팔리지 않았다. 나도 나지만 출판사 사장은 크게 실망했다. 내 시집 때문에 엄청 손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고한 분들이 있다. 표지의 캐리커처는 당시 소명여중 미술교사이던 채희용 선생님께서, 속표지 사진은 사진작가 김수군 님께서 찍어 주었다. 미리내 시집도 이 분들이 수고해 주셨다. 1989년에는 열네 번째 시집 <장미빛 당신>을 출간했다.

 

부천의 흙으로 빗은 시집 <눈 내리는 날은 역곡동으로 가자> 1992

▲ <그대, 복사골을 사랑한다면>과 <눈 내리는 날은 역곡동으로 가자> 표지     © 부천시민신문

 
1989년 초등학교 교사 7명이 모여 복사골문학회를 창립했다. 그때 초대 회장 문제술 선생이 믿음인쇄소 사장 전연욱을 소개해줘서 300여 쪽 분량의 무크지 <부천문단>을 1000부 발행할 수 있었다. 엄청난 출판비를 전연욱 사장님이 후원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집, 3집 돌탑을 쌓듯 부천문단이 한권, 두권 부천 문학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을 무렵, 나는 사장님께 엉뚱한 제의를 했다. 문학 서적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를 하나 하자고 했다. 1990년대, 당시 부천의 상황으로 보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반 서적도 아닌 문학서적은 더구나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도 일단 출판사 등록을 하자고 했다. 1990년 6월 10일 부천시 중구청으로부터 허가증(허가번호 18호)이 나오니 인쇄만 하던 믿음인쇄소는 드디어 책을 출간할 수 있는 출판사로 거듭났다.

 

출판사 등록 기념으로 우선 그동안 신문, 잡지를 통해 발표했던 부천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나의 산문집 부천 이야기, <그대 복사골을 사랑한다면>을 엮기로 했다. 그리고 1년여의 시간이 흘러갔지만 시집 한권을 만들지 못했다. 전연욱 사장께 미안함감이 들었다. 어쨌거나 내가 출판사를 하자고 했으니, 우선 이번에도 내 시집부터 엮기로 했다. 그동안 써두었던 원고를 주섬주섬 모아 출판사에 넘기고 제목은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고민을 했다.


그 때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 안에 단편 <비 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한다>와 유하 시인의 시집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으로 가야 한다>가 출간되었다. 그때는 동네 이름을 시집 제목으로 쓰는 것이 유행이었나 보다.  몇 몇 복사골문학회 회원들이 그러면 우리는 ‘눈 오는 날’로 하자고 했다. 이번에는 동네 이름이 문제다, ‘심곡동?’, ‘송내동?’, ‘여월동?’, ‘역곡동?’ 등 여러 이름이 나왔지만 결국 <눈 내리는 날은 역곡동으로 가자>로 결정돼 1992년 11월 1일 출간되니 믿음출판사 시선집 1번이 되었다. 전연욱 사장도 좋아했다.


‘역곡동’은 당시 부천시 중구에 속해 있었고, 조선시대 한성과 인천을 다닐 때 말을 갈아타던 곳이었기에 지금의 전철 역 이름도 ‘역곡역’이 되었다. 옛 이름은 ‘벌응절리’다. 또한 젊은이들이 많이 살고 있어 희망적인 동네이기도 했다.  이 시집을 보고 문학평론가 민충환 부천대 교수는 발문에 이렇게 말했다.
 
‘구자룡은 남달리 부천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가 쓴 <복사골 우리 동네>를 비롯한 2권의 시집은 온통 부천 사랑 노래로 가득 채워져 있고, 산문집 <그대 복사골을 사랑한다면> 또한 그러하다. 향토애가 결렬되고 주인의식이 없어 그저 잠깐 머물다 떠나는 마치 간이역과 같다는 이 황량한 도시에 한줌 부천의 흙을 보듬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시집에도 사연이 있다. 1991년 부천 여성백일장에서 시 장원을 한 금미자 시인이 역곡동 벌응절리 안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내 시집을 보고 눈 내리는 날 역곡동에서 출판기념회를 하면 꼭 시낭송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눈 내리는 날 역곡동에 가면/ 벌응절리 안동네에/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오래전 녹지대로 묶인 땅/ 벌떡 일어나/ 눈을 뭉쳐 집을 짓는다/ 아흔 아홉 칸 고대광실 같은 <눈내리는 날은 역곡동으로 가자> 2 중에서

 

열심히 외우고 연습도 많이 했건만 그 해 눈이 잘 내리지 않는 바람에 출판기념회가 무산이 되었으니 얼마나 섭섭했을까? 올겨울 역곡동에 눈이 오면 때늦은 출판기념회를 해야겠다. 이렇게 믿음시선은 10권을 출간하고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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