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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골 뜨락에 내린 내 영혼의 별①
부천시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가입 2주년 기념 연재Ⅰ[구자룡 편]
기사입력  2019/11/01 [12:22] 최종편집    구자룡 시인
-구자룡 시인의 저서 행적기 1 부천시민신문은 부천시가 ‘유네스코 문학창이도시’ 가입 2주년을 맞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본지 172호부터 관내 문인들의 자서전적 문학이야기를 연재한다. 첫 순서는 본지 편집주간인 구자룡 시인이다. 이번 연재 글은 지난 10월 16일 부천디카시협회(회장 정창배)에서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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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시인의 저서 행적기 1
 
부천시민신문은 부천시가 ‘유네스코 문학창이도시’ 가입 2주년을 맞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본지 172호부터 관내 문인들의 자서전적 문학이야기를 연재한다. 첫 순서는 본지 편집주간인 구자룡 시인이다. 이번 연재 글은 지난 10월 16일 부천디카시협회(회장 정창배)에서 강연한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다.<편집자 주>
 
책 다섯마차를 끌고 복사골 부천으로 입성하다
1972년 가을, 서울서 30년을 살다 책 다섯 마차를 끌고 부천으로 이사를 왔다. 이곳에 있는 소명여자중‧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부임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부천은 ‘소사’라 하여 봄이 오면 복사꽃 지천으로 피는 인구 5만여 명의 작은 읍邑이었다.


이 작은 읍이라는 데는 그런대로 독특한 묘미가 있었다. 더군다나 큰 도시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무언가 말할 수 없는 친근감을 주었다. 돌아보니 이렇게 정착한 부천에서 48년을 살면서 ‘시인, 작가’라는 이름으로 참 많은 활동을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많은 저서를 남긴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이번 연재에선 책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나의 첫 시집은 1962년 학창시절 프린트본으로 펴낸 시집 <촛불을 밝히며>이다. 이후 지금까지 60여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중에서 55권을 부천에서 활동하면서 출간했다. 젊었을 때는 1년에 1권은 다반사茶飯事고, 한 해에 5권까지 출간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열정이었다. 발간된 책마다 모두 특별한 사연과 얽힌 이야기가 있지만 그 중에서 내 영혼위에 내린 별과 같은 사연이 있는 몇 권의 책을 발행 연대별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중3 때 신춘문예 투고...동화 <하늘나라 구경 간 채송화> 1978

▲ 초판본(1978)과 재판본(1983) 표지     ©부천시민신문

내 할머니는 유난히 꽃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우리 집 앞마당에는 별의별 꽃이 다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무슨 잘못을 하면 그 벌로 꽃밭에 물주기를 시키셨다. 힘은 들었지만 덕분에 나는 꽃들과 친해졌다. 까까머리 중학교 3학년 시절 이야기다.


어느 날, 이 이야기를 원고지 30장 분량의 동화로 써서 당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투고를 했다. 제목은 <하늘나라 구경 간 채송화>였다. 신춘문예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리석게도 발표일만 기다렸다.


1962년 1월 1일, 아무리 신문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아도 내 이름은 없었다. 실망을 했다. 당연한데도 말이다. 다시 학교 교지에 투고를 했더니 운 좋게 채택이 됐다. 그렇게 동화 <하늘나라 구경 간 채송화>는 나의 데뷔작이 되었다.


부천으로 이사를 온 후 유일하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성당이었다. 이곳 소사성당만 하더라도 서울에 있는 성당보다 한결 정답고 훈훈한 분위기를 풍겼다. 프랑스 출신 가톨릭 소설가 조르즈 베르나노스의 소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를 연상하리만큼, 본당 신부 역시 자상한 분이셨다,


하루는 신부님의 부름으로 성당으로 달려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주일학교 에 교재가 필요한데 좋은 책이 있으면 추천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얼결에 그동안에 있었던 사연을 이야기하고 내가 쓴 동화 이야기를 했다.


다음날, 신부님이 읽어 보시더니 교재로 쓰기에 훌륭하다며 좋아하셨다. 이렇게 해서 책 제작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고, 15년 가까이 서재에서 잠자고 있던 동화 <하늘나라 구경 간 채송화>가 1978년 광명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표지는 지금 쉰 살이 된 아들이 다섯 살 때 소사성당을 보고 그린 그림이다.


그리고 5년 뒤, 부천의 어느 교회 주일 학교에서 이 동화를 보고 교재로 쓰고 싶다고 해 뜻하지 않게 재판(1983. 중앙문화사)을 발행하게 되었다. 이때 발행된 책은 작고한 이상덕 화백이 작업한 손 글씨와 그림이 표지를 장식해 좋아보였다.


2000년에 나는 30년 동안 정들었던 학교를 퇴직하고 어린이집을 개원했다. 어린이 집 이름을 ‘햇님 나라 구경 간 채송화 어린이집’으로 지었다. ‘하늘나라’를 변형시킨 이름이다. 이름 덕분에 2001년도 유아교육 전문 잡지 월간 <원 경영>이 선정한 ‘올해의 가장 아름답고 긴 어린이집’으로 뽑히기도 했다.

 

탈고 후 1주일간 시각장애가 온 이승훈 전기, <동방의 새 빛> 1983

<하늘나라 구경 간 채송화> 외에도 부천 이주 후 1975년 <쏟아지는 햇살더미>, 1977년 <빛이 내리는 뜰>, 1979년 <눈과 안경 사이의 고독>, 1980년 <빛과 혼과 그림자>, 1981년 <일곱 빛 강물마다> 등 시집을 자비로 출간했다. 그래서 신문 신간 소개 난에는 나를 두고 ‘다작多作의 시인’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그 무렵, 이상하게도 천주교회에서 발행되는 ‘가톨릭신문’, ‘경향잡지’, ‘소년’, ‘레지로 마리에’ 등을 비롯해 각종 신문, 잡지사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그리 유명하지도 않는 나를 어떻게 알고 원고를 써달라고 하는지, 참으로 신기하고 고마웠다. 청탁을 받고 정성 들여 원고를 열심히 써 보내면 신문과 잡지에 ‘구자룡’이라는 이름이 빛나 보이기도 했고, 그리 큰 금액의 원고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쏠쏠해 평소 보고 싶은 책을 사보는데 큰 보탬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주교 책만 출판하는 성요셉출판사 사장이 느닷없이 찾아 왔다. 내 시집을 한번 출판하고 싶다는 것이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나! 시집을 공짜로 출판 해주겠다니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그렇게 출판한 시집이 당시 시대를 풍자한 <춤추는 겨울>(1982)이다. 좀 팔리기는 했지만 출판사는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팔린 시집보다 증정한 것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대 이 시집이 후에 쥐약(?)이 될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어느 날, 요셉출판사 사장이 또 찾아왔다. 어린이용 한국 천주교 순교자 이야기 전집 12권을 만드는데 제2권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영세자 ‘이승훈’ 전기를 써달라는 것이었다. 원고 분량은 200자 원고지 1,200장이었다.


난감했다. 사장은 나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그동안 시집은 몇 권 출간했지만 여태껏 원고지 1천장은 고사하고 1백장도 써 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지난번 공짜로 출간해준 시집에 대한 고마움과 원고료를 많이 준다는 감언이설甘言利說에 허락하고 말았다. 원고 마감은 12월 말까지였다.


하루, 이틀, 사흘, 한 달, 두 달, 석 달 어찌하다보니 12월이 가까웠는데도 원고는 한 줄도 못 쓰고 전전긍긍 하고 있었다. 출판사에서는 난리가 났다. 전집이라 내가 안 쓰면 낭패를 본다는 것이다. 하기는 그렇다, 이제 와서 못 쓴다고 할 수도 없었다.


겨울방학이 되자마자(당시는 겨울 방학을 12월 15일 쯤 했음) 서재에 틀어박혀 원고지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마감일이 아직 보름 남았으니 하루에 100장 정도 쓰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창작이 아니고 자료를 찾아 써야 하는 원고이기에 만만치 않았다. 하루에 100장은 커녕 30장 쓰기도 어려웠다.


출판사 직원이 아침마다 우리 집으로 출근을 했다. 지난 밤에 쓴 원고를 갖고 가기 위해서였다. 미쳐 못썼으면 직원은 그 추운 날, 마루에 걸터앉아 기다리기까지 했다. 내가 무슨 유명한 작가라고 기다리면서까지 원고를 받아가야 하나 싶어 우습기도 했지만 그만큼 출판사 사정이 급박했던 것이다.
20여일 만에 겨우 탈고를 했다. 그러나 1,200장은 결국 채우지 못하고 겨우 1,000장만 써주었다. 그리고 하루 저녁을 자고 일어났는데 이상하게도 눈이 떠지지 않는 것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평소 눈이 나빴기 때문에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인가? 이러다간 정말 장님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행이 일주일 만에 눈을 뜨기는 떴지만 출판사 덕분에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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