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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부천', 요원한 '식민 잔재' 청산
복사골예술제까지 점령한 왜색(倭色)…‘앗싸‘ 논란
기사입력  2019/04/29 [08:22] 최종편집    구자룡 편집주간.시인
▲ 구자룡 편집주간. 

1905년 11월 17일, 일본의 강압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을사늑약이 체결됐다.

 
이로 인해 일제는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였고, 내정 장악을 위해 통감부를 설치하였다. 하지만 일제는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전인 1899년부터 이미 조선 땅에 들어와 경인철도를 개설하고 있었다.

 
그때 인천-제물포에서 노량진 간 7개의 역을 만들었는데 ‘소사역’(지금의 부천역)이 그 중의 하나였다. 이 소사역을 핑계로 일제는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부천군이 생기기 전인 1903년 일본인이 이 땅에 복숭아를 심었기에 오늘날 뼈아픈 복사골이 되고 말았다.

 
1985년 부천문화원에서 발행한 <복사골문화> 창간호 최은휴 시인이 쓴 ‘소사와 복숭아’를 보면 어찌하여 부천을 ‘복사골’이라 부르게 되었는지 그 동기에 대해 알 수가 있다.

“(앞부분 생략) 소사의 복숭아 재배시대는 1903년 경 부터라고 한다. 일본인 ‘다게하라(竹原)’가 인천 역장에서 정년퇴직 후, 이곳(소사)에 정착하면서 복숭아 재배를 시험했다고 한다. 지세는 완만한 경사로 배수가 좋으며 토질 또한 점토질과 사질이 되어 복숭아 재배의 적지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본인들이 너도 나도 남쪽 성주산을 중심으로 복숭아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참을 수가 있지만 그 당시 일본인들은 토지조사사업 등의 명목으로 조선총독부를 등에 업고 우리 국토를 마구잡이로 빼앗아 자기들 구미에 맞는 작물을 재배하였다.

 
특히 을사5적 중 한 명인 친일파 송병준이 소사 부근 땅에 일본으로부터 도입한 복숭아 품종을 마구잡이로 심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소사 사람들의 노동을 강제로 동원, 착취해가며 복숭아를 재배하였다고 한다.

 
소사 사람들의 노동력으로 1925년경부터는 재배 면적이 크게 늘어, 소사 복숭아 명성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복숭아가 인기를 끌면서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그 면적이 150정보(45만 평)에 이르러 복숭아는 연간 30만관(1,125통)을 생산하였다. 재배 지역도 소사 지역에서 점점 늘어나 깊은구지, 솔안말까지 확대되었다.

 
복숭아로 일본이 호황을 누릴 때 소사골에 살던 우리의 조상들은 일본의 강제 노동에 얼마나 시달렸을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자식들과 함께 먹고 살기 위해 눈만 뜨면 복숭아밭으로 달려 갈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소사 복숭아는 수원의 딸기, 안양의 포도와 함께 경기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가장 맛있는 과일 중 하나로 꼽혔으며, 더 나아가 대구의 사과, 나주의 배와 함께 전국 3대 과일로 유명해져 사회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소사 복숭아’라는 명칭이 붙어 오늘날까지 이어왔고 지금의 복사골이 되었던 것이다.

 
그 후, 사람들은 뼈아픈 우리 조상의 속도 모르고 ‘복숭아’ 향수에 젖어 ‘복사골 예술제’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벌이고, 친일파가 작사를 하고 작곡을 했는지도 모르고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시비를 20여 년간 시청 앞뜰에 세우고 노래를 불러왔다. 

 
올해도 5월이 되면 부천예총이 주최하는 제35회 ‘복사골 예술제’가 열린다. 하지만 이제 복숭아밭이 사라진지 수십 년이 되었고, 그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 아니 일제 잔재가 분명한데도 그 향수를 느끼고 그리움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면 큰 문제다. 일본은 우리의 향수도 그리움의 대상도 아니다. 지금도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는 적敵일뿐이다. 최근에는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만행을 부리고 있는 실정인데 아직까지도 기성세대는 일본의 향수를 못 잊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제35회 복사골예술제 슬로건이 ‘앗싸, 봄’이다. 아마 ‘기분 좋다’ ‘새롭다’는 뜻을 말하려고 한 것 같은데, 유감스럽게도 이 말은 일본어 ‘앗싸리’에서 유래된 말이다. ‘깨끗하다’ ‘아주 기분 좋다’라는 느낌을 줄 때 쓰는 말이다.

 
일본에 ‘가부끼’라는 나름의 전통 춤이 있다. 일본인들은 이 춤을 출 때, 흥을 돋우기 위해 ‘앗싸야로’ 라는 감탄사로 소리를 낸다. 우리로 말하자면 ‘얼쑤’와 갈은 것이다. 한때 가수 김흥국이 ‘호랑나비’라는 노래 말에 ‘앗싸’를 썼다가 큰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우리말에 이와 비슷한 ‘아사리’라는 말이 있기는 하다. 이말은 불교에서 큰 스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가 보통 ‘아사리 판’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는 여러 ‘아사리’들이 모여 의견을 나눌 때 쓰는 말이 시끄럽게 들려, 오늘날 ‘정신없다’로 둔갑을 한 것이다. 여기다 한술 더 떠 ‘아사리 난장판’이 된 것이다.

 
우리말에는 ‘앗싸’라는 말은 없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말로 착각하고 습관적으로 썼기 때문에 우리말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기스’, ‘나가리’, ‘노가다’, ‘함바’, ‘쿠사리’, ‘오뎅’, ‘단도리’ 등등, 아직도 수많은 일본식 말들이 우리 곁에 일제의 잔재로 많이 남아 있기에 안타깝다. 이 말들은 분명 일본 말인데 말이다.

 
이런 말을 청소년들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 기성세대는 스스로 반성하는 의미에서 쓰지 않아야 하는데 습관처럼 쓰다 보니 ‘앗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이런 큰 실수는 안 했을 텐데, 참으로 유감스럽다.

 
한편, 지난 27일 부천노총에서는 노동절 행사로 ‘한반도의 봄, 노동이 부르는 평화의 노래’를 개최했다. 그런데 원래 행사 제목은 ‘반도의 봄, 노동이 부르는 평화의 노래’이었다.

 
반도(半島)란 우리나라처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한 면은 육지에 연결된 땅”을 일컫는다. 그런데 일제는 강점기에 “한국의 역사가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특히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변동에 따라 타율적으로 변화했다”는 식민사학의 대표적인 반도론을 앞세워 우리나라의 역사를 폄하하고 비하했다.

 
그런 의미로 쓰인 ‘반도’를 노동단체의 대표인 부천노총에서 행사명으로 적어 시내 곳곳에 게시한 현수막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치 ‘일제 식민지시대로 회귀하나’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착각은 곧 참담함으로 이어졌다.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창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이렇듯 일제 잔재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것은, 벌써 그 역사를 잊었다는 뜻인가? 정녕 역사의식이 없어서 벌어진 ‘사고’인가? ‘한반도’라고는 써도 ‘반도’라고는 쓰지 않는 용어의 뜻을 몰라서 벌어진 일일까? 

 
올해 들어 부천시에서 유독 이러한 사고가 많이 벌어지는데 대해 우려를 나타내지 않을 수 없다. ‘문화도시’이자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인 부천시에서 제국주의의 잔재조차 구별을 못한다면 이것은 스스로 저급한 문화 수준을 자인하는 것인 동시에 역사의식이 없는 대단히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다.

▲ 35회 복사골예술제 포스터     ©부천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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