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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오르빌 공동체 여행기①
건강한 삶이 지속 가능한 자연과 평화의 땅 ‘Auroville’
기사입력  2017/03/28 [13:58] 최종편집    이영주 부천시청 사례관리팀장
▲ 마티르 만디르 아침명상 모습     © 부천시민신문

 

현대 문명이 “빨리 빨리”를 외치며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것과 달리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건강한 삶, 지속 가능한 삶, 느린 삶, 물질이 많지 않아도 즐겁고 행복한 삶에 대해 희구(希求)하기 시작했다. 그런 면에서 생태친화적인 대안공간으로 전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고 있는 오르빌은 관심 대상 1순위이다. 무엇이 현대인을 오르빌로 유인하는지, 궁금증을 알아보기 위해 최근 이곳을 다녀온 이영주 씨의 여행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해본다. <편집자 주>    

 
Prologue

욕심이 부른 기절이었다. 머리에서는 새벽 1시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이롭다고 생각했지만 인도 첸나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어느새 나는 스튜어디스에게 ‘피시 앤 비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야금야금 생선튀김과 맥주를 뱃속에 넣었다.
맥주도 1캔을 다 마시지 않았고 생선튀김도 조금만 먹었다고 변명을 보태보지만, 내 뱃속은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지 않았다. 잠깐 잠을 청했는데 속이 메스껍고 토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화장실로 가야겠다. 통로 쪽 자리라 다행이다. 그리고 화장실로 갔다.
“마담, 마담, 마담”
다급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웬 남자가 나를 흔들고 있었다. 물론 남자는 영어로 말하고 있었다. 맨 정신으로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를, 정신을 잃고 기절한 채 비행기 바닥에 누워있는 내가 어찌 알아듣겠나! 아직도 속은 메슥거려서 일으켜 달라고 몸짓을 했더니 “노, 노”라며 비닐봉투를 가져다준다. 
‘아니, 나더러 누워서 토를 하라고? 얘, 너는 누워서 토할 수 있니?’
손바닥에 피가 흥건하다. 오마나? 갑자기 울고 싶어진다. 부축을 받아 일어나는데 깨진 안경이 손에 잡힌다.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으려고 하니 스튜어디스가 안된다며 문을 잡고 있다. 내가 또 쓰러질까봐 그러나보다. 화장실 거울을 보니 눈 위가 찢어져 얼굴 절반쯤엔 피가 묻어있다. 이건 좀 대형사고임이 분명하다.
지금은 새벽 2시 비행기 안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잠들어 있고 병원 응급실에 갈 수도 없는 상황. 공연히 소란을 피우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테고. 식탐을 막지 못했던 내 머리는 이번엔 제대로 작동했다. 스튜어디스는 소독약을 가져다 찢어진 부위를 정성스럽게 치료해주었고 거즈와 반창고로 사후처리를 완료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의 인도여행이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이 오르빌은 영성공동체이며, ‘인도의 유럽’이라고 말하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오르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나도 그랬다. 지난해 이곳을 다녀온 이들이 ‘꼭 가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작년 여름, 이런저런 이유로 백수가 된 3명의 여자가 인도의 오르빌에 다녀왔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도에 꼭 가보고 싶은 소망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오르빌은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점이 아주 많은 곳이었다. 세계 45개국에서 온 2,700여명의 사람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으며,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일은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
숲이 우거진 곳이며, 유기농으로 채소를 키우고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한다.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되고, 높거나 낮은 직위가 없기 때문에 권력을 갖거나 출세를 하기 위해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란다. 그리고 아이들은 시험과 평가가 없는 학교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단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오르빌은 유토피아가 틀림없다!
지난해 12월, 친한 선배로부터 2월에 인도 오르빌에 가지 않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같. 이. 갈. 래?”
“당. 연. 하. 지. 요!” 
7박8일 일정인데 원하면 연장도 가능하단다. 직장도, 가정도, 돌봐야 하는 몸, 더 이상의 휴가는 어렵겠지만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인도여행은 시작부터 사건을 일으켰다. 인천공항에서 홍콩, 홍콩에서 타이, 타이에서 첸나이까지 비행과 기다림으로 보낸 시간이 20시간 가까이 되었다.
위장병으로 몇 달간 동네 의원과 한의원, 종합병원까지 병원순례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내게 세 번을 갈아타고 가야하는 인도여행은 조금 무리였다. 결국 세 번째 비행인 인도 첸나이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을 먹고 체해 ‘기절’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비록 인도병원 체험까지 곁들였지만 오르빌에서의 1주일은 느낌과 감동이 어우러진 멋진 시간이었다. 

 

오르빌의 시작,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음의 땅
오르빌은 인도의 시인이며 사상가인 스리 오르빈도(1872-1950)로부터 시작되었다. 스리 오르빈도는 독립운동을 하다 1908년 투옥되었는데 감옥에서 독특한 영적체험을 하게 되었다.
즉, 그는 언젠가는 인류가 개체의식을 초월해 일체의식을 지닌 존재로 진화할 것을 깨닫고 일체성을 실현한 세상을 꿈꾸게 되었다. 1950년 스리 오르빈도가 78세를 일기로 사망하자 그의 영적 반려자였던 미라 알파사(Mira Alfassa, 1878∼1973)가 그의 유지를 받들어 오르빌 공동체를 시작했다. 미라 알파사는 영적인 여성 스승에게 붙여지는 호칭인 ‘마더(The Mother)’라고 불린다.
오르빌은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폰디첼리에 자리한 면적 25㎢의 생태공동체이다. 유네스코 총회에서는 창립 전인 1966년부터 만장일치의 지지와 지원을 보냈다. 전 세계 모든 남녀가 종교와 정치, 국적을 초월해 평화와 진보가 조화를 이루는 도시로 만들어졌다. 1968년 2월 28일, 124개국과 인도의 모든 주를 대표하는 젊은이들이 모였고 그렇게 오르빌이 시작되었다. 그곳에는 스리 오르빈도와 마더 미라 알파사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나라에서 흙을 가져와 오르빌 땅에 묻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124개국에서 모였다고 하는데 그 당시 우리나라 젊은이는 누구였을까?
오르빌 헌장에는 “오르빌은 전체 인류의 것이며 끝없는 교육과 지속적인 진보, 그리고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음의 장이 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오르빌에 있는 내내 ‘의식의 진화’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듣게 된다.
오르빌(Auroville)이라는 이름은 동트는 새벽(프랑스어 aurore에서 따온 Auro)과 도시(ville)라는 뜻인데, 스리 오르빈도의 오르가 일치하는 것이 우연이 아닌 듯하다. 오르빌은 생태친화적인 대안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있으며 현재 진행형이다.

새벽 3시에 첸나이공항에 도착했다. 오르빌리언 허혜정 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이곳에서는 오르빌 거주 주민을 오로빌리언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여행사 직원도 아닌데, 왕복 6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와 기다려 주었다. 이건 엄청 고마운 일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비행기 안의 사고 이야기와 내 얼굴을 보면서 마치 오랜 친구처럼 걱정하고 안아주기까지 하였다.

 

솔라키친, 지속가능한 에너지 공동체
여행 첫날, 오르빌의 자치행정을 담당하는 타운홀(Town Hall)로 갔다. 그곳에서 각자 머무는 게스트하우스를 등록하고 달러를 환전해 오르빌 카드에 입력한다. 오르빌에 있는 동안 현금은 사용할 수 없고 오직 오르빌 카드만 사용해야 한다. 인도는 외국인에게 매우 엄격하다(비자 받을 때 느낌도 그랬다!).
솔라 키친(Solar Kitchen)은 태양열을 이용해 요리하는 곳이다. 반경 15m의 거대한 집열접시가 태양열을 집적해서 요리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반구 모양의 등근 볼에는 여러 조각의 거울이 붙어있는데, 거울에서 모아진 열을 중앙의 구리봉에 집중시켜 봉 안의 물을 가열하고 증기로 변환해 요리실로 이동한다. 그러니까 불로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증기로 요리를 하는 것이다. 증기로 요리할 수 없는 계란 푸라이나 튀김은 일부 가스연료를 사용한다.
솔라 키친은 설계공학자 질(Gilles)이 20년 전 설계했는데, 질은 뜨거운 햇볕 아래서 우리들을 위해 열정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특허권을 냈는지 물어보니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으며, 누가 물어보든지 자세히 안내해준단다. 텍사스에 반경 20m, 프랑스에도 10m 집열접시가 설치되었단다. 여러 대학에서도 견학을 하고 연구 중인데, 대학에서는 연구만 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실천하지 않는 쓸모없는 연구(?)에 대한 서운한 공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20년 동안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해 온 솔라키친은 직사광선이 일 년 내내 풍부한 지역이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도시는 환경오염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에너지는 저장하지 않으며 필요한 만큼 적정하게 사용하는 것이 오로빌 방식이란다. 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는 여행기간 내내 ‘질 아저씨’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워했다. 여행 끝 무렵에 몇 명의 오로빌리언과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질도 함께 했는데 열정(passion)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을 더했다. 마침 우리가 함께 한 식당 건물도 건축가인 잘의 부인과 함께 지었다고 한다.
모기가 함께해서 조금 힘들긴 했지만 진흙과 짚으로 만든 벽돌인데 비에 흘러내리지 않도록10%의 시멘트를 섞었다고 한다. 멋진 친환경 유럽식 카페에서 ‘선한 의지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한 저녁시간은 정말 유쾌하고 멋진 일이었다. 난 그날 처음으로 채식주의자를 위한 비건 아이스크림을 맛보았다.  

 

생활협동조합, 적은 소득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그 곳
솔라 키친 바로 옆에는 오르빌 주민들만 이용할 수 있는 협동조합이 있다. 이곳은 오르빌과 인근 지역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과 공산품을 판매하는데 주민들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직접 운영한다. 오르빌은 생태공동체만이 아닌 경제적으로도 다른 삶을 꿈꾸는 이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인 듯하다.
이곳은 일회용품 사용에 매우 철저하다. 여행 전에 ‘한국에서 일회용품을 가져오지 말라’는 안내를 받기도 했다. 이들은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세제를 구매할 때는 빈통을 가져가 필요한 만큼 담아가고, 곡물은 낱개 포장도 있지만 덜어가기도 한다. 매장 앞에는 재활용품 수거함이 놓여있다.
나도 여행 내내 작은 쓰레기라도 만들지 않으려 주의를 기울였고, 웬만한 쓰레기는 다시 여행 가방에 넣어가지고 왔다. 그들 공동체에 작은 한줌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생각으로.

▲ 에버그린 커뮤니티 입구 안내판     © 부천시민신문
▲ 퍼타일 포레스트의 점심시간     © 부천시민신문
▲ 아이들의 천국, 러닝 커뮤니티     © 부천시민신문
▲ 숲속 커뮤니티 하우스     © 부천시민신문
▲ 거의 매일 먹은 유기농 야채 샐러드     © 부천시민신문
▲ 사다나 포레스트 입구에서 안내자 지니와 함께(오른쪽이 필자)     © 부천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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