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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최초의 성당 건물이 파괴되었다”
적산가옥 ‘소림별장’에서 소사성당이 된 역사적 건물 철거
기사입력  2016/06/15 [10:38] 최종편집    구자룡 편집주간.시인

‘향수’의 시인 정지용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

▲ 얼마전 파괴돼 사라진 옛 소사성당 건물 전경     ©부천시민신문
▲ 구자룡 시인.편집주간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최근 향수의 시인 정지용과 관련 있는 부천 최초의 성당이 쥐도 새도 모르게 파괴(破壞)되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부천시 소사동 산 1번지 성가양로원 안에 (성모병원과 소명여고 뒤) 있던 일명 ‘소림별장’ 건물을 헐고 최근 다른 건물을 신축 중이다.
이 건물은 비록 일본인이 쓰던 별장이었으나 부천 최초의 성당 건물이며 부천에서 제일 오래된 근대식 건물이다. 또한 한국 현대시의 거봉 정지용 시인과 깊은 인연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 이 건물이 부천 최초의 성당이 되었으며 정지용과는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그 사연은 이렇다.
1943년 그동안 서울에 살던 정지용 시인 일가가 부천군 소사읍 90-1번지로 이사를 온다. 일본이 서울에 소개령(疏開令-공습이나 화재 등에 대비하기 위해 한곳에 집중 되어있는 주민이나 물자, 시설 등을 분산시키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때 정지용은 어디로 이사를 갈까 고민을 하다가 지금의 부천, 소사를 택했다고 한다. 그의 고향은 충북 옥천이다. 큰 아들 정구관의(작고) 증언에 의하면 당시 소사가 고향 같은 느낌을 받아 이사를 왔다고 한다.
정지용은 서울에 있는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있었기에 기차로 통근을 했다. 그리고 일요일이면 가족과 함께 인천 답동에 있는 성당까지 가서 미사(가톨릭 신앙생활의 중심을 이루는 종교의식. 또는 하느님에게 드리는 제사, 영신(靈神)의 양식(糧食)이라고 함)를 드렸다. 그는 신앙심이 깊은 천주교 신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정지용이 사는 집 뒤에 공소(公所-신부가 상주하지 않은 작은 천주교회 단위. 미사가 집전되지 못하고 대신에 공소예절만 함)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신자들은 이곳을 소사공소라 불렀다. 그 후 인천까지 가지 않고 서울에 있던 임세빈 요셉 신부를 소사공소에 모시고 다른 신자들과 함께 주일을 지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신자들이 한 명 두 명 자꾸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럴듯한 성당이 필요했다. 요즘 말로 전세거리도 없어 어느 할머니의 방을 빌려 공소라고 쓰고 있는 형편에 성당은 사치였다. 그러나 신자들이 성당을 갖고 싶은 기도는 계속 되었고 끝내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
하루는 어느 신자가 정지용을 찾아왔다. 경인선 철길 건너 북쪽, 원미산 언덕에 성당으로 쓰기에 아주 좋은 장소가 있다는 것이었다. 급히 가보니 마을 사람들이 일명 소림별장이라고 부르는 적산가옥(敵産家屋-8.15 광복 이전 일본인 소유였던 재산)이었다. 땅도 넓고 나무도 많아 풍경도 좋았다. 성당으로 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때는 겨울, 정지용은 단숨에 당시 적산건물 관리를 담당하고 있던 인천 미군 숙소로 달려갔다. 담당자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소림별장을 성당으로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러나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몇 날 며칠을 인천으로 들락날락했는지 모른다. 기차 시간을 놓쳐 지나가는 군용 트럭을 타고 집에 오기도 했다. 
 그 당시 정지용이 영어를 잘해 통역이 필요 없었다고 한다. 얼마 후 정지용의 성의에 감화된 미군 장교는 소림별장을 찾아와 한 바퀴 돌아보더니 성당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렇게 해서 1946년 4월 5일 부천군 소사 성당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정지용은 서울로 다시 이사를 갔다.
1949년 임세빈 신부가 다른 곳으로 가고 새 신부가 부임을 하니, 그분이 바로 6.25 한국 전쟁 때 소사를 위해 빈민운동을 한 신성우 마르코 신부이다. 6.25 전쟁 후 1955년 3월 신성우 신부는 평소 인연이 있던 서울 정릉 성가소비녀회(성가수녀회)의 소사분원을 개설했다.

▲ 성가수녀 소사분원 간판(소실된 소사성당은 성가소비녀회에서 관리하고 있었다. 사진 속 인물은 이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소명여고 학생들로 기사와는 무관하다.)     ©부천시민신문

성가수녀회는 당시 소림별장과 소사성당을 중심으로 성가양로원, 성가보육원, 소명여자중·고등학교, 그리고 후에 성가병원까지 설립하고 관리 운영을 했다. 현재는 성가보육원은 오래전에 폐원하였고, 소명여자중·고등학교는 인천교구로, 성가병원은 성모병원이 되어 서울교구로 넘어가고 지금은 성가양로원만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때 소명여자중·고등학교 도서관으로 사용하던 부천 최초의 성당 건물이었던 소림별장 건물과 신성우 신부가 6.25사변 직후 지은 소사성당 건물의 소유권이 성가양로원으로 넘어갔다. 그러니까 두 건물의 주인이 성가소비녀회가 된 셈이다.
소림별장 건물은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은 아니지만 두 가지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다. 하나는 부천 최초의 성당이라는 점과 또 하나는 한국시단의 큰 인물 정지용 시인의 흔적이 있는 곳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볼 때 보존 가치가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이 건물은 얼마 전 부셔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현재 수녀원 건물이 신축 중이다. 성가수녀회 관계자에 따르면 수녀들의 생활관으로 사용할 4층 높이의 건물을 짓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을 왜 파괴하게 내버려 두었을까 하는 강한 의문이 든다.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고 신축하려면 시청이나 구청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담당자는 이런 사실을 모르고 허가를 해주었을까? 알고도 모른 척 한 것일까? 모르면 물어 볼 일인데…. 아니, 철거 허가서를 제출했을 때 현장 답사는 했을까? 그래, 부천시가 이것밖에 되지 않나 의문스럽다. 영화‧만화가 전부는 아닐진데, 이번 일은 부천시 차원에서 막았어야 했다.
성가소비녀회도 마찬가지다. 그 건물이 부천 최초의 성당 건물이라는 것과 신성우 신부의 신앙적 정신이 흠뻑 배어있는 것을 뻔히 다 알면서도 자기네 소유라고 가차 없이 파괴하는 것은 가톨릭 정신이 아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난 예수를 생각하면 하느님 정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고민을 하긴 했겠지만 결론은 성당을 파괴하고 수녀원을 확장하고 있지 않는가? 이러다간 그 옆에 있는 신성우 신부가 피땀 흘려 지은 성당마저도 파괴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아니 이미 원형을 잃은 지 오래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립던 고향은 어디 메뇨
산 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가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에 정하지 않고
먼 항구로 떠나는 구름 (하략)
 
부천 중앙공원에 있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비의 일부분이다.
지금 부천시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문학창의도시’를 꿈꾸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학적 역사의 흔적이 있는, 그것도 한국 현대시의 거봉 정지용 시인의 흔적을 파괴했다. 복원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파괴하게 내버려 두다니, 제 정신인가? 서울 은평구에서는 정지용을 앞세워(?) 국립문학관을 유치하려고 야단인데, 부천에서는 있는 것도 지키지 못하고 부셔버리다니…. 부천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수치스럽고 창피한 일이다. 부천을 아끼던 정지용 시인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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