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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 시작한 학생운동, 시민사회활동가로 꽃피우다
시민사회운동활동가로 살아온 나의 삶...부천시민연합 백선기 고문
기사입력  2016/03/24 [14:18] 호수 89   나정숙 기자
파도처럼 다가온 시대적 과제 속에 임무처럼 감당해온 세월 지금은 부천시민사회의 역량을 보다 안정적으로 키우는 것이 필요해 1시민 1NGO 1협동조합 통해 공동체의 가치인 시민사회 강화되길김만수 시장이 약속한 공동 시정부 운영 실패는 민관 협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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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처럼 다가온 시대적 과제 속에 임무처럼 감당해온 세월
지금은 부천시민사회의 역량을 보다 안정적으로 키우는 것이 필요해
1시민 1NGO 1협동조합 통해 공동체의 가치인 시민사회 강화되길
김만수 시장이 약속한 공동 시정부 운영 실패는 민관 협치의 파탄

 

▲ 퇴임 기념 사진액자를 받고 기뻐하는 백선기 이사장     ©나정숙 기자

지난 17일 부천시민연합 제18차 정기총회를 마지막으로 백선기(58) 이사장이 임기를 끝내고 고문으로 위촉됐다. 백선기 이사장의 이름 뒤에는 부천시민연합을 비롯해 부천한겨레두레협동조합 이사장, 사)따뜻한한반도사랑의연탄나눔운동 부천지부 공동대표, (재)남북평화재단 부천본부 이사,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 이사, (사)일과사람 전 이사장, 유월민주포럼 회원 등 많은 직함이 따라다닌다. 1990년대에는 이보다는 ‘의장’이란 직함으로 더 많이 불렸다.
대학교를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데모와 최루탄이 등장하던 시절, 타의든 자의든 시대에 파묻혀 많은 학생들이 ‘운동권’이 되었고, 그 한계 속에서 그들은 다양한 세상살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세대가 이제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고 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이 부천에서는 아마 백선기 이사장이 아닐까 싶다. 그는 대학생 때 학생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후 노동운동을 거쳐 평생을 시민사회운동활동가로 살아왔다. 그에게 시민운동은 무엇이고, 현재 부천의 시민사회활동은 어떤지 물어보았다.<편집자 주>    

   

≡ 이사장 이임 소감?
이임을 할 때 흔히들 ‘시원섭섭하다’고 하는데 저는 ‘감사 죄송하다’라고나 할까요? 그동안 부족한 저와 함께 해주신 회원님들과 선배, 동지들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이 우선이었고요, 그런 성원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데 대한 죄송함이었습니다.
  
≡ 이사장직을 이임하면 고문으로 역할을 한다. 대체로 고문은 자문 역할인데, 결국 현직에서 떠나는 것 아닌가? 앞으로 활동은 어떻게 할 계획인지?
네, 말씀처럼 제가 이임하는 것은 백의종군하는 셈인데 그동안 부천시민연합으로 보면 제가 전면에 서서 활동을 해온 것에 비하면 아무래도 제한적이라고 봐야지요. 그러나 그것은 부천시민연합 차원에서 그렇고, 제가 아직도 남북평화재단이나 협동조합 등 시민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시민사회활동가로 일을 해나갈 것입니다. 구체적인 것은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 평생을 시민사회활동에 매진해오셨는데, 그동안 활동내용을 소개해 달라. 또 그렇게 외길을 견지할 수 있었던 추동력은 무엇이고 스스로 그동안의 활동에 대해 평가한다면?
저는 학생운동을 통해 사회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에 대한 염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제대로 하려면 소외된 민중의 삶의 현장인 노동현장에서 가장 고통 받는 노동자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노동현장에 위장취업하면서 부천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런 선택에는 1979년 야학활동을 하면서 경험한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이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주야 맞교대를 하면서 70시간이 넘는 잔업철야를 하며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 살다가 결혼(1989)을 하고, 노조위원장까지 맡게 된 노동조합 활동을 하였습니다. 회사가 지방으로 이전하게 돼 현장 활동을 정리하고 1991년 노동단체를 설립하여 노동운동을 보다 전문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지요.
동시에 1991년 발족한 부천지역민주운동협의회와 민주주의민족통일부천연합이라는 연합단체 활동을 하면서 부의장과 의장의 직분을 맡아 사회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총선과 대선시기 자주적인 민주정부수립운동(1992), 우루구아이(UR)라운드 반대(1993)와 5.18특별법 제정 투쟁(1995), 범민족대회 참가(1991~1996)와 부천시민통일한마당(1993) 및 통일음악회(1996~), 노동법‧안기부법 반대투쟁(1996)과 국민승리21운동(1997), 성주산살리기운동(1995~1998)과 세입자주거인권 보장투쟁, 중동소각장의 친환경적 운영 투쟁 등이 당시의 대표적인 활동이었습니다,
1997년 평화적인 정권교체라고 하는 정치지형의 변화를 중심으로 한 우리 사회의 변화 속에서 부천연합 소속 청년‧노동‧시민단체들이 하나의 단체로 모여 1999년 ‘부천시민연합’이란 통합단체로 출범하면서 본격적인 NGO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는데 단체의 이름을 <‘나눔과 살림의 공동체사회’를 열어가는 부천시민연합>이라고 명명한데서 알 수 있듯이 조직의 형태와 사업 내용, 사업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내동가스폭발사건 선보상 및 가스안전대책위 활동과 실업극복시민운동(1998), 푸른부천21 및 마을만들기운동 및 러브호텔반대운동(2000), 원미산살리기운동(2001~)과 화상경마장이전반대운동(2001) 등 환경과 지역 현안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 급증하였으며, 낙천낙선운동(2000)과 부천시민통일문화제(1998~) 등이 이 시기의 주된 사업이었습니다. 2000년 이후는 비교적 최근이니까 생략하겠습니다.
이러한 활동으로 일관하게 된 것은 저에게 주어진 소명을 다하겠다는 일념이 크게 작용하였지만 다른 생각을 할 새도 없이 파도처럼 다가오는 제반 과제와 임무를 감당하느라 정신없이 살았다고 하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아요. 그러나 제 삶이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었다면 그것의 8할은 그동안 제 삶을 인정하고 옹호해 준 제 처 덕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 그동안 활동에 대한 평가는 제 몫이라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함께 한 일이라서 평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제 개인으로 좁힌다면 대학원을 간다든가 좀 더 전문적인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발전과 재충전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 백선기 이사장과 부인.     ©나정숙 기자

 

≡ 시대에 따라 시민사회활동이 많이 변모한 것 같다. 이런 변화 속에서 부천시민연합이 지향해온 목표와 실천 활동, 또 오랜 기간 존속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부천시민연합 운동이 여러 면에서 부족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우리 사회에 의미가 있었다면 위에서 말한 나눔과 살림의 공동체사회를 열어가겠다는 합리적 진보를 표방하면서 보편적 상식에 기초한 시민사회운동을 전개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난 2010년 선거에서 김만수 시장을 당선시킬 때 범시민사회단체가 연대했고 공동 정부 운영을 약속했다. 많은 시민들이 새로운 시정부의 모델을 기대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바람은 얼마가지 못했다. 당시의 상황과 지속되지 못했던 이유와 한계는 무엇이고, 그런 ‘연대’의 경험이 현재 부천시민사회 활동을 무력화하는데 한 요인이 된 것은 아닌지?
이 문제는 한마디로 민관거버넌스(협치)의 파탄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는 시민참여-열린행정을 시정의 원칙으로 삼은 원혜영 시장 시기를 중심으로 한동안 우리 부천의 자랑이라고 할 만한 일이었는데 홍건표 시장 시기에는 파탄이 났다가 당연히 다시 복원되는가 싶었는데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퇴행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겠으나 지역사회가 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사회적 자본인 신뢰가 중시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저버린 데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이는 철학의 문제이자 인간됨됨이의 문제라고 봅니다. 민관협력의 파탄은 시민단체의 어려움 뿐만 아니라 부천 시정은 물론 이른바 지난해 중동특별계획구역 복합개발 사태와 같이 지역사회와 부천시민의 불행이라고 할 것입니다.
  
≡ 몇 년 새 부천의 시민사회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활기가 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특히 중동특구, 영상문화단지, 종합운동장 일원 개발 등 부천시장이 진행하고 있는 현안사항은 많은데 시민들과 교감 없이 이루어지는 개발 위주의 정책을 막아낼 방안이 없다. 시민사회단체가 무력화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민사회가 무력화되었다기 보다는 시민의 의견수렴이나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조차 없이  밀어붙이고 있는 초대형의 시리즈 토건개발사업에 대한 행정 권력의 독주뿐만 아니라 4명의 국회의원과 8명의 도의원을 차지하고 부천시의회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다수당의 정치적 독점과 퇴행에서 비롯되는 문제라고 봅니다. 민관거버넌스시대에 홍건표 시장 때처럼 관이 거부하면 별다른 수단과 도리가 없습니다. 다만 시민사회가 자기역량을 좀 더 안정적으로 키워내서 부천시의 발전전략에 대한 각종 의제와 이를 실행해나갈 로드맵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시민사회의 발전과 관련하여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봅니다.

 

≡ 앞으로 부천 시민사회단체 활동 방향에 대한 의견은?
역시 시민사회단체들이 시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서 더욱더 광범위한 시민들의 참여를 이루어내야 할 것입니다. 

 

≡ 부천시민사회를 이끌어갈 후배들은 많은 키워놓으셨나요? 함께 활동해온 동지, 후배, 시민들께 남기고 싶은 말씀은?
새로운 세대를 키운다고 해서 가능한 문제는 아니고 ‘스스로 큰다’고 봅니다. 다만 그러한 세대들이 올곧게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은 큰 문제라고 자책합니다. 동시에 이 문제도 제대로 되려면 민관협력이 제대로 되어야 비로소 가능한 문제라고 판단됩니다. 이 시대를 함께 해준 선배 원로 동지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1시민 1NGO, 1협동조합을 통해 권력의 논리를 우선으로 하는 국가의 한계와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고 보완해 갈 시민사회(공동체의 가치로 작동)를 강화하는데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 성양권 목사(좌)와 김길주 고문이 백선기 이사장에 대해 적은 글을 들고 촬영했다.     ©부천시민신문
▲ 백 이사장의 이임을 축하해주러 온 이주민지원센터 딴진 씨와 김봉경 사무국장(우)     ©나정숙 기자
▲ 행사장 찾은 우지영 시의원도 한마디!     © 나정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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