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제자인 자로(子路)가 공복(公僕, 정치하는 이)의 자세를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가 “선지노지(先之勞之), 무권(無倦)” 즉 “(백성들보다) 자신이 먼저하고 그 다음에 (백성들에게) 수고롭게 하라. 늑장을 부리지 마라”고 답하였다. [논어 자로편,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신정근 역 참조. 子路問政한대 子曰 先之勞之. 請益한대 曰 無倦)
최근 정치인의 기본 덕목이라 할 청렴과 도덕성, 윤리에 위배되는 행동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면서 국민들의 공분과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선지노지는 솔선(率先)과 관련된다. 솔선은 공복으로서의 기준을 제시하고, 더 나아가 최고 지위의 공복인 입법자들의 권리이면서 의무이다. 공복의 신분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준엄한 시작과 끝을 책임지라는 국민의 요구이기도 하다. 윗물이 맑은 사회에서는 비리와 부정이 함부로 설칠 수 없는 이유이다.
공복은, ‘공무원으로 공공 사회의 심부름꾼’이란 뜻으로 사용되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 정치인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공복이라는 서늘한 사명감(使命感)을 가져야 한다. 사명감이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내려는 마음’이라고 한다면, 심성에 관계된 일이 우선되어야 할 터인데, 지금 그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행태에 대해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사명으로서 주어진 일은, 국민의 엄정한 명령이자 법적 의무인 것을 더 잘 알면서도 스스로 지킬 수 없는 특권인 법을 만들어, 국민을 도탄(塗炭) 빠트리게 한다면 그들을 과연 공복이라 할 수 있을까? 또 이러한 무용한 공복을 ‘세충(稅蟲)’이라 말한다면 국민으로서 월권(越權)일까?
세금은 국민의 신성한 고혈(膏血)이다. 공복의 법적 신분 보장은 솔선에 대한 국민과의 약속이며, 무언의 차가운 계약(契約)이다. 국민과의 약속은 법보다 위에 위치해야 감히 법치국가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와 함께 순간적으로 ‘가중처벌(加重處罰)’이라는 상식어가 머리를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통념 상 가중처벌은 글자 그대로 범죄에 대한 벌을 추가한다는 의미인데, 국민이 공복에게 부여한 권리로 행하라는 일을 악용해 범죄를 저질렀을 때, 무거운 벌이 더해지는 법적 행위일 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을 일컫는 일반인들의 말은 차라리 애교일터. 불비한 안목으로 가중처벌법을 아무리 검색해 봐도 공복에 대한 가중처벌이 없어 다시 한번 놀라웠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特定經濟犯罪加重處罰等─法律)은 “건전한 국민경제 윤리에 반하는 특정경제범죄에 대한 가중처벌과 그 범죄행위자에 대한 취업제한 등을 규정함으로써 경제 질서를 확립하고 나아가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제정되었는데 특정‘정치’범죄에 대한 가중처벌법은 왜 없을까? 더구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에 따른 기관 또는 단체의 범위는 무려 46개 단체나 적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범죄가 없다는 것이 더욱 경악스럽다.
이제 코로나 엔데믹이 선언되고 일상의 회복을 위해 국민들은 생존의 치열한 사투로 몸부림이 뜨겁다. 소만(小滿)은 1년 중 만물이 점차 생장해 가득 차게 되는 날로, 농민들은 모내기와 초여름 준비로 가장 땀나는 절기이다. 이렇듯 국민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조용히 시절(時節)을 알고 솔선수범(率先垂範)하고 있다.
그런데 물의를 빚은 공복자들은, 사과는 물론 반성도 없고, 심지어 범죄혐의로 법원에 출두하면서도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왜 그리도 당당할까? 무엇이 공복자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석가가 세상에 온 큰 뜻이 자비(慈悲)라면, 국민의 실상을 굽어 살펴주시라고…. 이 저녁 아린 두 손을 뜨겁게 모아본다.
<저작권자 ⓒ 부천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오피니언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