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에 가면 ‘김소월 문학관’이 있다(?)

소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신 날 아침에

구자룡 시인·부천문학도서관 관장 | 기사입력 2021/12/06 [09:41]

김포에 가면 ‘김소월 문학관’이 있다(?)

소월... 나보기가 역겨워 가신 날 아침에

구자룡 시인·부천문학도서관 관장 | 입력 : 2021/12/06 [09:41]

▲ 구자룡 시인 캐리커처 

평생을 바쳐온 소월 자료 수집

 

해마다 12월 24일이 되면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들떠있다. 그러나 이날은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이자 전국민의 애송시 ‘진달래꽃’을 쓴 소월이 33세의 나이로 요절(夭折)한 날이다. 

 

아기 예수가 탄생하던 날, 하필이면 이날 소월은 세상을 등졌을까? 이 일을 기억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김소월, 그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명은 김정식으로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남단리가 고향이나,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왕인동 외가에서 1902년 9월 7일 태어났다. 1920년 18살에 잡지 <창조>에 ‘낭인의 봄’ 등 5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천재 시인이다. 시집 <진달래꽃>은 1925년 12월 26일 김억에 의해 매문사에서 초간본이 발행되었다. 소월이 살아생전 출간한 유일한 시집으로 국가 문화재로 등재되기도 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

 

'국민시인' 명성과 달리 단독 '소월 문학관' 없어 

 

소월과 나와의 인연은 이렇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숙제로 베껴간 소월의 <금잔디> 시 한 편이 내 운명을 바꿔 놓았다. 그 후 문학소년 시절을 거쳐 소월을 때로는 등에 없고, 때로는 가슴에 품고 교사의 박봉을 털어가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의 시집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수집한 소월의 자료가 2000여 종이 된다. 60여 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동안 수집한 자료로 2014년에는 소월 서거 80주기에 경기도 부천시에서 <진달래꽃, 김소월을 추억하다> 전시회도 열었고, 자료집 <진달래꽃, 김소월>도 출판하였다. 문학평론가로 대학 강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딸과 함께 2016년 <진달래꽃 소월시집을 찾아서>에 이어 2018년 <김소월, 대중가요를 만나다>도 출간했다. 또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전국의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소월의 시비 170여 점을 찾아내 지금 출간 준비 중이다. 한마디로 나는 평생을 소월에 미쳐 살았다.

 

소월의 시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동기는 이렇게 추정된다. 1956년 여성 전문잡지 <여원> 창간과 함께 소설가 정비석이 소월의 시를 주제로 한 소설 <산유화>를 연재하였다. 그 소설이 1958년 영화로 제작되면서 김소월의 시는 단박에 전국의 젊은 남녀의 심금을 울렸다. 그 영화 속에 소월의 시가 무려 20여 편이나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자 각 출판사에서 너도나도 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을 <산유화>, <못잊어>, <김소월 시 감상집> 등 제목만 달리하여 600여 종이 출판되었다. 내용은 같으나 모두 제목만 다른 시집들이다. 비록 70년이 지났다고는 하나, 출판업자들은 소월 유가족에게 인세 한 푼도 주지 않으면서 지금도 계속 발행되고 있다. 

이렇게 발행된 소월시집이 지금껏 무려 약 600만 권이 팔린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중에는 출판사 주소 불명의 덤핑 책도 허다하다. 어찌했건 단 한 권의 시집이 이토록 베스트셀러가 된 일은 단군이래 처음이요, 성경 발행 이후 처음이다.

 

각 매체에서 실시한 각종 설문조사를 보면 한국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 김소월이요, 좋아하는 시도 김소월의 ‘진달래꽃’, 애송하는 시도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단연 으뜸이다. 그 외에도 각처에서 소월 시낭송회, 소월음악회, 소월을 소재로 한 영화, 연극 등 수없는 공연이 이루어졌다. 교과서에도 <진달래꽃>과 <엄마야 누나야>를 비롯해 소월의 시가 근 50여 년 간 우리들의 정신세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에는 아직까지 소월의 단독 문학관이 없다. 그 이유는 소월이 내 고향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심지어는 북한 출생이기 때문에 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 북한 사람이라고 문학관을 유치할 수 없다고 한다. 참 어이가 없다. 이제 이런 이데올르기는 버릴 때가 되지 않았는가?

 

썼다가 버려진 김포의 '소월 문학관'

 

지난 2018년 3월 22일 ‘평화의 도시’를 표방하던 경기도 김포시에서 (당시 시장은 유영록) 북한 땅이 바라보이는 ‘애기봉’에 김소월 문학관을 세우자는 제안이 왔다. 나는 기꺼이 소월의 자료를 기증하기로 했다.

 

▲ 구자룡 시인(좌)과 유영록 김포시장(협약 당시)이 업무협약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부천시민신문

 

당시 유영록 김포시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소월 문학관 조성 협약서를 작성하고 업무 협약식을 가졌다. 김포 어린이합창단이 출연해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도 불렀고, 김포와 부천 문인들도 기쁜 마음으로 박수를 쳤다. 그날 김포 시장은, 세미나도 하고, 소월 백일장도 개최하고, 김소월을 기리는 각종 행사도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각종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협약을 체결한 지 석 달 만에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시장이 바뀐 김포시는 김소월 문학관 건립 계획을 단칼에 파기했다. 그것도 당사자에게 서면 통고나 유선 통고도 아닌, 일방적으로 어느 지방 신문에 기사 한 줄로 끝을 냈다. 전후 사정도 없이 말이다. 더 황당한 것은 그 후 4년이 되도록 지금까지 김포시는 필자를 불러 공식적인 해명 한마디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행정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 

 

아무리 개인과의 협약이라지만 엄연히 ‘김포시’라는 지방 행정기관과의 공식 절차로 이뤄진 일인데,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고, 손해배상은 그만두고라도 ‘이래서 못하게 되었다. 죄송하다. 미안하다’ 정도의 설명이나 사과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협약’이 당사자 간의 논의에 의해 체결되었다면 ‘협약 파기’도 당연히 논의해야 하고,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럼에도 김포시는 지금까지 공식 발표도 안하고, 사과도 없다. 이야말로 ‘힘 있는 행정기관’의 갑질이자 횡포 아닌가? 

 

'가짜뉴스' 유포한 김포시, 공식 답변해야 

 

김소월 문학관이 김포시에 세워진다고 신문, 방송, 인터넷에 온통 도배를 했건만 김포시는 그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결국 김포시는 가짜뉴스를 언론에 배포했고, 언론은 허위 사실을 유포한 셈이 되었다. 공권력이 이렇듯 가짜뉴스를 만들어 유포하는데 앞장섰음에도 4년이 되도록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당사자야 피해를 입던 말든, 시장이 바뀌었으니 전임 시장이 진행한 일은 ‘나 몰라라’ 무참하게 짓밟아버리는 것이 김포시청의 행정 스타일인가? 이래서야 힘없는 개인이 어떻게 행정기관을 신뢰하고, ‘정치인’ 시장과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겠는가!

 

또 필자야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국민 시인’ 김소월을 이렇게 푸대접 해도 되는 것인가? 김포시가 대한민국의 행정기관을 자처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오리발을 내미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지금도 언론기사를 기억하는 사람들로부터 간간이 전화를 받는다. “김포 김소월 문학관 잘 운영되고 있느냐, 방문하고 싶다” 등등. 김포시 계획대로라면 이미 개관이 이루어졌을 ‘김소월 문학관’에 대해 ‘김포시’는 이제 공식적인 답변을 해야 한다. 

 

*이 글은 김포저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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